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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동북아 중심 항만' 전략 바꿔야 한다

중앙일보 2005.11.30 20:57 종합 30면 지면보기
11월 말 개장한 중국 상하이(上海)의 신항인 양산항은 2020년까지 모두 50개 이상의 선석을 더 개발해 상하이 배후지역의 화물은 물론 그동안 우리 항만을 이용하던 중국 동북부의 칭다오(靑島).톈진(天津).다롄(大連)의 환적화물과 대만.일본.한국의 환적화물까지 유치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동북아 물류 중심 국가 건설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하고 부산항과 광양항을 동북아 지역의 중심 항만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런 계획이나 구상과 관계없이 동북아의 중심 항만은 시장 원리에 따라 고객인 선사(船社)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선사들은 오직 상업적 고려에 의해 가장 효율적이며 비용이 덜 들고, 안전한 항만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선사들은 운임을 낮추기 위해 상호 전략적 제휴를 통해 규모를 확대하고 선박 대형화를 추구하고 있다. 주요 선사들은 모든 항구에 다 기항하지 않는 대신 지역마다 중심 항만을 정하고, 주변 항구로부터 화물을 모아 오는 환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중심 항구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항만 전략은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장점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정학적 요충지라며 내세운 지도는 대륙을 통한 육상교통망이 완성됐을 때를 가정한 것이다. 문제는 한국횡단열차(TKR).중국횡단열차(TCR).러시아횡단열차(TSR) 등 육상교통망의 연결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이를 제외하면 부산항과 광양항의 위치는 동북아의 골목 안에 들어앉은 모양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지역의 중심 항만은 상하이항이 가장 유력하다. 패배적인 사고방식에서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그 이유는, 첫째 엄청난 화물 창출지역을 배후에 갖고 있고, 둘째 주변 항만과의 가격 경쟁에서 우위에 있으며, 셋째 파업의 위험 없이 선사들에 언제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우리 항만이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심 항만이 되겠다는 전략은 비현실이다. 대신 실속있고 장기적인 항만 전략이 필요하다. 중심 항만이 못 됐다고 해서 우리 항만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항만은 질적으로 서비스가 일본보다 월등히 낫지도 않고 가격 경쟁력은 중국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정부 보조를 통해 일시적인 가격 우위를 만들어 낼 수는 있으나 이는 국민 세금만 축내는 미련한 짓이다. 그보다는 우리 항만의 열세를 강점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항만이 일본에 비해 가격면에서 유리하고, 중국보다는 품질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우선 우리 항만의 고객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일본 서해안의 항만과 인접한 내륙지방의 화주들이 유망한 고객이다. 비싼 일본의 물류비와 땅값을 대신할 수 있는 물류거점을 우리 항만이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일본의 무역업자들이 우리 항만을 거점화할 수 있도록 맞춤형 물류상품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침체에 빠진 국내 종합상사들과 제휴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종합상사가 보유한 우수한 인력과 마케팅 능력, 세계적인 네트워크 등을 항만에 결합시켜 새로운 비즈니스의 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의 항만 전략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물류상품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잠재 고객들에게 우리 항만을 이용하는 것이 더욱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항만은 이 지역의 중심 항만으로 거듭날 수 있다. 화물과 비즈니스가 있는 곳에 선박은 자연히 따라오게 돼 있다. 맹목적인 중심 항만 육성 정책보다는 실현 가능한 국가 항만 전략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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