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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35세, 육사 8기 주축 … 국회의원만 15명 배출

중앙일보 2015.03.13 00:58 종합 7면 지면보기
김제민 공수단 대대장
1961년 4월 7일 서울 명동 회합에 참석한 5·16 주체는 박정희 소장과 김종필 예비역 중령을 포함해 총 29명이었다. 초기부터 가담한 멤버들이다.


명동 회합 5·16 주체 29인

 29명의 평균 연령은 35세. 젊은 장교들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박정희 2군 부사령관(소장)이 44세였고, 최연소인 차지철 공수단 중대장(대위)은 27세 청년이었다. 주축은 김종필을 포함한 육사 8기생이었다. 8기가 16명, 8특(특별기수)이 2명이다. 김재춘 6관구 참모장(대령) 등 육사 5기생도 4명이 참석했다. 계급은 영관급(대령 7명, 중령 19명, 소령 1명)이 대부분이다.



 5·16 성공 뒤 이들 29명의 행보는 엇갈린다. 일부는 권력의 핵심에 섰다. 김종필·김재춘·김형욱, 3명의 중앙정보부장이 나왔다.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은 김종필을 비롯해 15명이다. 국회로 진출하진 않았어도 문공·문교부 장관(홍종철), 건설·상공부 장관(이낙선) 등 정부 요직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공기업 임원 정도 자리에 그친 인물도 여럿이다.



 거사에 참여했지만 ‘반혁명’으로 몰린 이들도 있다. 박치옥 공수단장과 문재준 6군단 포병단장, 김제민(88·사진) 공수단 대대장 세 사람은 61년 7월 ‘장도영 최고회의 의장 반혁명음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다. 62년 3월 박치옥·문재준은 무기징역, 김제민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그해 5월 형 집행면제로 모두 풀려났다.



 29명 중 생존자는 5명(김종필·오치성·김제민·김용건·최홍순)으로 파악된다. 구순(九旬)이거나 구순을 앞두고 있는 나이다. 김제민 전 5·16민족상재단 이사장은 ‘4·7 명동 회합’에 대해 “삼삼오오로 모임을 가졌던 혁명세력이 30명 가까이 한자리에 모인 건 그때가 처음”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키는 작지만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 박정희 소장에게 모두들 믿음을 가졌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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