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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동독과 달리 핵 보유 … 독일처럼 통일 오진 않을 것"

중앙일보 2015.03.13 00:45 종합 14면 지면보기
박진 전 국회 외통위원장(왼쪽)과 대담하고 있는 세르게이 카라가노프 HSE 교수. [사진 박진 전 위원장]


세르게이 카라가노프(63) 러시아 고등경제대(HSE) 교수는 “북한은 핵무기가 있기 때문에 남북 통일은 독일 통일 시나리오로 가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모스크바에서 가진 박진 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과의 인터뷰에서다. 그는 “1991년 독일 통일 때 동독은 서독에 항복하는 수준이었으나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해 체제 유지를 위해 핵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 체제가 붕괴하지 않는 이상 한반도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북한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이웃으로 지낼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북한의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러시아의 생각을 읽다] 카라가노프 HSE 교수
북 붕괴 기대보다 공존의 길 찾아야
종전 70년 행사 때 4자 회담 가능
러 동방정책, 한국이 교두보 되주길



 러시아 대통령실 외교 고문을 지낸 카라가노프 교수는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2005년 선정한 세계 100대 지식인에 꼽힐 정도로 외교·안보 분야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러시아가 아시아를 중시해야 한다는 ‘신동방정책’의 입안자로, 정부 부처 내 극동개발부를 창설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2004년 세계 50여 개 국 800명 이상의 전문가가 참여해 러시아와 관련된 내용을 토론하는 발다이 클럽을 결성해 2013년까지 회장으로 활동했다.



 -북한의 정치·경제 상황은.



 “12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이 북한 체제의 붕괴를 예측했으나 빗나갔다. 어떤 면에서 북한은 승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북한 체제의 붕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북한을 한번에 무너뜨리려는 시도는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대한 평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성공은 남북 관계 개선과 상호 협력이 관건이다. 박근혜 정부는 남북한 신뢰 프로세스를 제안하고 있지만 북은 핵 개발, 미사일 발사 등을 통해 안보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남북 경제 협력의 순차적 확대 등을 통해 북한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융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 통일의 방향은.



 “단일 국가로의 통일은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순차적인 경제 통합 후 연방제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이 러시아·중국과 정치·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고립을 탈피해 아시아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국가로 나갈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10년 이상을 바라보면서 러시아·한국·중국이 협력하여 북한의 경제를 서서히 융합시키고 체제 변화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남북 통일을 위한 중국의 역할은.



 “북한을 제외하고 통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남한이 30, 러시아 20 이라면 중국은 50을 차지한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중국의 역할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군사적 개입이 아닌 경제적인 변화와 융합이 통일의 유일한 길이다.”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종전 70주년 기념식의 의미는.



 “남북 두 정상이 초청에 응한다면 실질적 회담을 하지 않더라도 공식석상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한국·북한에게는 대화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만약 남북 정상이 회담을 갖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담에 참석한다면 남·북·중·러 4자 회담이라는 새로운 포맷도 가능할 것이다.”



 -러시아 정부의 한국 정책은.



 “러시아 외무부는 한국에 관심이 많다. 현재 푸틴 정부는 남북 통일에 지원과 도움을 주고, 전략 파트너로 한국을 고려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독일처럼 아시아에서 한국이라는 교두보를 두고자 한다.”



 -냉전 후 미국 주도 국제 질서에 대한 평가는.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의 세력 확장이 세계 정세를 불안정하게 하고 러시아 세력권에 영향을 준다면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서방은 경고를 외면했고 그 결과 지난 4~5년간 상황이 악화됐다. 앞으로 서방이 러시아의 이해 관계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악화될 것이다. 또 서방은 이라크·유고슬라비아·리비아 침공에서 보듯 법과 규칙 없이 불법 침공을 일삼고 있다. 이런 행위가 지속되면 러시아도 규칙을 무시하고 대응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가 러시아에 중요한 이유는.



 “러시아는 90년대 말, 늦어도 2000년대 초에 아시아로의 회귀를 단행했어야 했다. 이 지역의 경제 성장에 동참해 성장을 도모했어야 했다. 지금 러시아의 아시아 선회 속도는 그리 빠른 것은 아니다. 아시아 시장은 유럽 시장에 비해서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고 있고, 기술·금용 면에서 많은 가능성을 보유해 앞으로 3~5년 내 큰 성과를 볼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통치 철학은.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강력한 주권을 가진 강대국이 돼야 하고, 러시아의 권위를 위축시키려는 서방의 시도에 대항하고 그 시도를 중단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또 현재 세계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불법적 행위가 묵인되는 만큼 러시아는 새 질서를 확립하거나 이것이 힘든 경우 국력을 키워 국가·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대담 = 박진 전 국회 외통위원장

정리=정재홍 기자 hongj@joongang.co.kr





◆HSE=경제학·사회과학·수학·컴퓨터공학에 강점을 지닌 러시아의 명문대. 러시아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데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예브게니 야신 등 경제학자들이 1992년 설립했다. 모스크바뿐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니지니노브고로드·페름에 캠퍼스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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