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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밭 푸른 향에 취하거나, 삼나무 숲길 걷고 온천욕 하거나

중앙일보 2015.03.13 00:01 Week& 4면 지면보기



규슈올레 4차 개장 3개 코스를 걷다





































‘제주올레 자매길’ 규슈올레가 또 새 코스를 열었다.



지난해 12월 후쿠오카(福岡)현 야메(八女) 코스와 오이타(大分)현 벳푸(別府) 코스가 개장한 데 이어 지난달 28일 구마모토(熊本縣)현 아마쿠사·레이호쿠(天草· 北) 코스가 열리면서, 규슈올레는 모두 15개 코스 177.4㎞의 장거리 트레일로 거듭났다. 2012년 2월 사가(佐賀)현다케오(武雄) 코스가 개장한 이래 규슈올레는 해마다 2∼4개 코스를 새로 열었다.



지난겨울 연 3개 코스가 이른바 4차 개장이었다. 이번 개장 때도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가 코스를 최종 선정했고, 규슈관광추진기구로부터 콘텐트 교류 명목으로 1000만 엔(약 930만원)을 받았다. 규슈관광추진기구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규슈올레를 방문한 인원은 10만 명을 헤아린다. 이 중에서 약 6만5000명이 한국인이고, 나머지 약 3만5000명이 일본인이다. 규슈올레를 방문하는 한국인도 늘고 있지만, 비율로 보면 일본인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규슈올레의 성과에 힘입어 규슈관광추진기구는 지난 3일 일본의 ㈔스포츠투어리즘 추진기구 등이 수여하는 ‘스포츠진흥상’을 수상했다.



week&은 규슈올레 15개 전 코스 개장식에 참석했고, 15개 전 코스를 다 걸었다. 지난겨울 4차 개장에서 선보인 새 코스 3개를 소개한다. 이번에도 각 코스의 장점과 단점을 짚었다.





야메 코스 녹차밭 풍경. 야메시는 일본에서 고급 차 생산지로 유명하다.




후쿠오카 위성도시의 숨은 매력

야메 코스



규슈올레 개장식에 참석하는 일행 중에는 한국 여행사 관계자가 꼭 끼어 있다. 그들은 코스 개장과 함께 여행상품을 기획한다. 워낙 현지 정보에 훤해서 여행사 관계자는 규슈의 어지간한 시골마을도 속속들이 꿰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야메 코스 끄트머리 마루야마쓰카 고분. 개장식 때 지역 가수가 공연을 했다.
그런데 야메에서 막혔다. 어느 모퉁이에 숨어있는 오지도 아니고, 규슈를 남북으로 잇는 고속도로와 바투 붙은 교통의 요지를, 후쿠오카 공항에서 겨우 1시간 거리인 인구 6만7000명의 도시를, 예닐곱 명이나 되는 한국인 여행사 관계자 누구도 들어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야메는 한국인에게 지나치는 도시였다. 마을 이름부터 해명해야겠다. 야메(八女)시는 ‘부당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일본어 잔재 ‘야매’(일본어 ‘야미(闇)’가 변형됐다)와 하등 상관 없다. 외려 일본 최고(最古) 역사서 『일본서기』에서 이름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먼 옛날 이 마을을 보살폈다는 여신 야메츠히메(八女津)에서 비롯됐다.



마을의 오랜 내력만큼 야메 코스는 규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고대 유적을 다수거느리고 있다. 야메시에 3∼7세기 조성된 고분이 300기가 넘는다고 하는데, 야메 코스를 걸을 때 크고 작은 고분 10여 기를 지난다. 마을 곳곳에 들어선 주인 모를 무덤의 풍경은 우리의 고도(古都) 경주나 김해의 풍경과 흡사하다.



그러나 야메 코스를 대표하는 풍경은 따로 있다. 전체 면적 62㏊에 이른다는 야메 중앙대단원이다. 약 9㎞에 이르는 야메 코스의 3분의 1 정도가 이 대형 차밭을 통과한다. 야메시는 일본에서 최고급 녹차 생산지로 유명하다. 규슈올레가 난 지역 중에서 사가현의 우레시노(嬉野)가 차로 유명하지만, 야메산(産)이 더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



야메 코스는 제주올레 정신에 부합하는 코스라고 할 수 있다. 마땅히 내세울 명소가 없는 마을에 올레길이 나면서 이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기대가 되는 코스다.



● 코스정보

길이: 9.2㎞ 3∼4시간 난이도: 하(下)

장점&단점=모든 게 쉽다. 후쿠오카 시내에서 가까워 여정 잡기도 쉽고, 코스 전체가 쉬워 걷는 것도 쉽다. 그저 쉽기만 해서 문제라면 문제다.

후쿠오카에 짐을 풀고 하루 나들이로 다녀오거나,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들르는 식으로 여정을 짤 수 있겠다.





벳푸 코스는 깊은 산을 헤집고 다닌다. 길을 걷는 내내 유후다케의 거대한 봉우리가 따라다닌다.




온천여행 1번지 벳푸의 재발견

벳푸 코스



온천 도시 벳푸의 마스코트 ‘벳뿅’. 온천 수증기를 형상화했다.
일본 하면 온천이고, 온천 하면 벳푸다. 한국인에게 벳푸는 일본 온천여행의 다른 이름이다. 너무나 많은 한국인이 벳푸 온천에 몸을 담근 상황이어서 벳푸 온천 하면 외려 식상하다는 감마저 든다. 그럴 만도 하다. 벳푸는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 온천수 용출량 1위를 자랑하는 고장이다. 2800개가 넘는 온천수에서 1분에 10만ℓ이상의 온천수가 쏟아져 나온단다. 벳푸 방문객은 연 800만 명을 헤아린다. 유게무리(湯煙)라 불리는 온천 수증기로 벳푸 시내는 온종일 뿌옇고 흐리다. 그 벳푸에 규슈올레가 났다.




제주올레의 정신을 이해한다면 이 대목에서 마땅히 의문을 가져야 한다. 이미 관광객이 넘쳐나는 관광도시에 굳이 규슈올레를 낼 필요가 있을까. 의문은 길을 걸으면 풀린다. 말하자면 규슈올레 벳푸 코스는 온천 도시 벳푸시와 전혀 별개의 관광 브랜드다. 벳푸 코스는 해발 600m 위에 들어앉은 산중호수 시다카(志高)호에서 시작한다. 호수를 끼고 도는 길은 이내 푹신한 삼나무 숲길로 이어지고, 삼나무 숲길은 바로 짙은 그늘 드리워진 대나무 숲길로 연결된다. 길을 걷는 내내 멀찍이 서 있는 유후다케(由布岳·1584m)의 웅장한 봉우리가 보인다. 유후 다케 반대편 기슭에 또 다른 온천마을 유후인(由布院)이 자리한다.



벳푸 코스에서 만나는 거대한 삼나무 숲.




벳푸 코스는 오쿠분고(豊後), 고코노에·야마나미(九重·やまなみ) 코스와 더불어 대표적인 ‘산중(山中) 올레’라 할 만하다. 코스대부분이 숲속 흙길이다. 제법 숨이 차오르는 오르막 구간도 있지만, 발이 편해서 그런지 힘들다는 느낌은 적었다. 규슈관광추진 기구가 매긴 난이도는 중상(中上)이다. 그러나 체감 난이도는 한참 낮았다. 벳푸 시내에서 계란·채소 따위를 온천 증기열로 찐 이른바 ‘지옥찜 요리’를 먹은 기억도 생생하다.



● 코스정보

길이: 11㎞ 3∼4시간 난이도: 중상(中上)

장점&단점=단언컨대 규슈올레 15개 코스 중에서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췄다. 온천 명소 벳푸에 기반하면서도 또 다른 온천 명소 유휴인 하고도 가깝다. 동행한 한국 여행사 모두가 만족했다.워낙 명소여서 교통·숙박·식당 등 편의시설도 잘 돼 있다. 무엇보다 길이 좋다. 미심쩍은 건, 벳푸시의 의지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벳푸시 공무원이 규슈올레에 얼마나 정성을 들일지 궁금하다.





아마쿠사ㆍ레이호쿠 코스는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 많다. 토미오카 반도 해안길 풍경.




올레 특구를 선언하다

아마쿠사 · 레이호쿠 코스



규슈 지도를 보자. 구마모토현 왼쪽으로 길게 뻗어나온 반도 지형이 아마쿠사 제도다. 이 아마쿠사 제도 안에만 120개가 넘는 섬이있다. 규슈에서도 외진 지역이다. 외져서 낙후한 지역이다. 그런데 이 오지에 규슈올레가 무려 3개 코스나 있다.



아마쿠사 제도에서 3번째로 규슈올레가 난 레이호쿠 지역은, 아마쿠사 제도에서도 오지에 속한다. 다시 지도를 보자. 아마쿠사제도 왼쪽 맨 끄트머리에 비죽 튀어나온 지역이 레이호쿠다. 규슈를 남북으로 잇는 고속도로에서 내려온 뒤로도 2시간 이상 좁은 길을 달려야 한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레이호쿠까지는 4시간30분이나 걸린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슈올레가 났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이거나, 두 가지 모두다. 규슈올레를 향한지역 주민의 성화가 남다르거나, 온갖 수고 감내하고 찾아와서 걸어야 할 만큼 길이 좋거나. 우선 지역 주민의 열정. 레이호쿠의 행정단위는 정(町)이다. 우리나라의 군(郡)에 해당한다. 레이호쿠 인구는 7850명이다. 아주 작은 어촌이라는 뜻이다. 지역 공무원이 이 구석진 어촌에 규슈올레를 낸 이유는 분명하다. 규슈 관광지도에서 소외된 자기네 고장을 규슈올레를 통해 활성화하고 싶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레이호쿠보다 먼저 규슈올레를 낸 아마쿠사 제도의 다른 두 지역도 속내가 같다.





아마쿠사·레이호쿠 코스를 걷다 보면 140년 전통을 자랑하는 화과자 집을 지난다.
규슈관광추진기구는 “아마쿠사 제도는 규슈 안에서도 올레 특구라 불릴 만큼 열의가 높다”고 설명했다. 길도 나쁘지 않다. 걷는 내내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꼈다. 중세시대 농민 전쟁의 흔적이 어린 토미오카(富岡) 반도를 한 바퀴 돌아나 오는 약 3㎞ 남짓한 구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토미오카 마을에 숨어있는 140년 역사의 화과자집도 기억에 남는다. 흙길보다 포장도로가 많은 게 흠이지만, 길이 대체로 평탄해 참을 만하다.




● 코스정보

길이: 11㎞ 4∼5시간 난이도: 중(中)

장점&단점=장점과 단점이 뚜렷하다. 한국인은 커녕 일본인도 잘 찾지 않는 외딴 어촌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신선하고 싼 해산물은 덤이다. 그러나 단점이 더 도드라진다. 멀어도 너무 멀다. 한국 여행사도 상품 개발에 난색을 표했다. 규슈올레 전 코스 완주라는 거창한 뜻을 품지 않고서는 좀처럼 발길이 향할 것 같지 않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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