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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규의 한국미술명작선 ⑬·끝] 쉰 한 살 단원 김홍도의 봄날.

중앙일보 2015.03.12 05:00
김홍도, 『병진년화첩』 중 「백로횡답(白鷺橫畓)」, 1796, 견본담채, 26.7×31.6㎝,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글씨가 그 사람이다’라는 말은 흔히 합니다. 하지만 ‘그림이 그 사람’이라고는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글씨에는 명필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천분(天分) 이외에 수련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반면 그림은 처음부터 명수가 가능합니다. 때문에 수련을 통해 몸에 밴 덕성이나 인격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재주가 있는 화가들이 애초부터 프라이드가 강한 것은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북 같은 화가는 늘 자신이 최고라면서 다른 사람을 업신여겨 주변과 불화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김홍도는 그런 화가들 가운데 ‘타고난 성격 좋은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북과 나란히 김홍도를 알고 지냈던 안산 출신의 문인 신광하(申光河ㆍ1729∼96)는 ‘단원은 성격이 조용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면 ‘마치 마음속에 깨달음이 있는 사람처럼 그린다’고 했습니다. 이외에도 단원의 사람됨을 칭찬한 글은 많습니다.



오랫동안 단원을 지켜본 스승 강세황 역시 단원의 성품과 예술적 기질이 ‘보통 사람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는 『단원기』라는 글에서 ‘사능의 사람됨은 용모가 아름답고 속에 품은 뜻이 맑다’고 하며 또 ‘성품이 음악을 좋아해서 매번 꽃피고 달 밝은 저녁이면 한두 곡을 연주하여 스스로 즐겼다’고 했습니다.(‘사능’은 단원의 자입니다)



단원은 실제로 피리를 잘 불었으며 음률에도 해박했습니다. 표암 주변의 문인, 화가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그림 '균와아집도'에도 그는 피리 부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일화이기는 합니다만, 그림 값으로 받은 3천전 가운데 2천전을 주고 매화를 사고 남은 돈 중 8백전으로 술을 받아 친구들과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즐기는 매화음(梅花飮)을 열었다는 일은 두고두고 유명합니다.



단원에게는 이처럼 조용한 성품에 아름다운 용모 그리고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천재와 융합되면서 그의 내부에서 새로운 그림을 탄생시키는 힘이 된 듯합니다. 또 그것은 단원이 18세기 조선의 생활 풍속을 그리면서 한국인의 마음, 정서를 터득하는 바탕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천품과 천재로 인해 어느 조선시대 화가도 그려내지 못한 한국적인 서정을 담은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51살 때인 1796년 봄에 그린 『병진년 화첩』입니다. 이 화첩은 모두 20점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각 그림에는 아무런 글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맨 마지막 폭인 '옥순봉' 그림에만 ‘병진년 봄에 그리다. 단원(丙辰春寫 檀園)’이라고 돼있습니다. 그림 내용은 옥순봉이나 사인암과 같이 충청도 일대의 실경 산수에서 풍속화에 속하는 그림, 그리고 화조화까지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들에는 앞서의 풍속화나 혹은 중국 고사를 그린 그림과 달리 특별한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냥 예전의 농촌이라면 생활 주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장면들을 그린 것입니다. 물가의 새들도 궁중 화조화에서 나오는 화려하고 진귀한 새들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물새들로 물속에 자맥질을 하거나 무리지어 헤엄치는 정도입니다. 그 중 한 폭인 '백로횡답'은 이 화첩을 대표하는 명품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는 바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을 법한 마음 속 고향의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여름날 이른 아침. 아직 안개가 다 걷히기 전에 파랗게 물든 무논을 배경으로 해오라기 한 쌍이 낮게 날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 마리는 왠지 논 가운데 그냥 남아 있습니다. 물이 가득 차 있는 논 옆으로 논둑길이 시골 어디에서 흔히 보아온 그대로 자연을 닮은 선으로 그어져 있습니다. 그 한쪽에는 개울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돌들이 모습을 보입니다. 둑길 위에는 물기에 젖은 수풀은 검은 먹 점으로 진하게 대조적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평범하기 이르데 없지만 사랑스럽고 한편으로 정겹기 그지없는 모습입니다. 이 한 폭의 풍경 속에는 자연에 순응해 순박하게 살아온 한국인 당시 조선 사람들의 삶의 한 단면과 이들이 느낀 정서가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그림은 오랜 세월 중국 문화권 속에서 그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왔습니다. 시대에 따른 영향의 강약 속에 독자적인 회화 양식 그리고 미적 감각이 차츰 확립되는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김홍도 시대에 이르러 중국 회화화풍이나 중국회화의 미학과는 전혀 무관한 조선만의 자연주의적 감성과 서정을 그림 속에 그려내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김홍도 이후 많은 화가들이 단원의 화풍을 본떠 그리며 그와 같은 서정성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단원 이후로 이에 성공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김홍도(金弘道ㆍ1745∼1806 이후)

조선후기 최고의 화가로 자는 사능(士能)이며 호는 단원(檀園) 외에 서호(西湖) 등을 썼습니다. 하급무관집안 출신으로 어려서 표암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웠습니다. 10대 후반에 도화서의 화원으로 들어가 실력을 발휘했으며 30살에 이미 화명을 떨쳤습니다.

정조 즉위와 함께 총애를 받으며 어진 모사 외에 수원 용주사 후불탱화와 수원능행도 제작의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공로로 경상도 안기찰방(39살), 충청도 연풍현감(48살) 등 외관직을 지냈습니다. 표암 그룹의 여러 화가와 교류한 이외에 동갑 화원인 이인문, 박유성 등과 절친하게 지냈습니다.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 생활이 곤궁해지며 1805년에는 전주의 전라도 감영의 배속 화원으로 내려간 듯합니다. 1남1녀 중 딸은 결혼에 실패해 돌아와 함께 살았고 아들 김양기는 연풍 현감시절 늦게 얻은 아들로 훗날 직업화가가 됐습니다.



맺는 말=조선시대 전체의 회화 흐름을 대표적인 그림 약 120점을 가지고 이야기 식으로 소개하고자 한 글의 일부를 13회에 걸쳐 소개했습니다. 글의 내용은 추후 책으로 묶일 예정입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글=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ygado2@naver.com

한국미술정보개발원(koreanart21.com) 대표. 중앙일보 미술전문기자로 일하다 일본 가쿠슈인(學習院) 대학 박사과정에서 회화사를 전공했다. 서울옥션 대표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했다. 저서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역서 『완역-청조문화동전의 연구: 추사 김정희 연구』『이탈리아, 그랜드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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