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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달러에 신흥국 휘청

중앙일보 2015.03.11 17:33
세계금융시장이 새로운 고비를 맞았다. 미국과 유로존의 엇갈리는 통화정책으로 인한 ‘1유로=1달러’의 패리티 시대다. 가장 충격이 큰 곳은 신흥국이다. 신흥국 시장에 유입됐던 자금이 달러 강세 속에 빠져나오며 통화가치 하락 등으로 휘청대고 있다.



수퍼 달러의 기세는 거세다. 유로화에 대한 미 달러가치는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1일 유로화 가치는 1.06달러대로 떨어졌다. 2003년 4월 이후 최저치다.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11일 98.618로 상승했다.



불을 댕긴 것은 지난 주말 발표된 미국의 2월 고용지표다. 고용 지표 개선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에 달러 값은 오르기 시작했다. 9일 시작된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QE)는 유로화 가치를 끌어내렸다. 자산 매입을 통해 매달 600억 유로가 시장에 풀리는 ‘유로 과잉의 시대’가 도래하며 유로화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최근 3개월간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13.07%나 하락했다. 록웰 글로벌 캐피탈의 피터 카르딜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로화 때문에 달러가 점점 더 위험한 수준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강(强) 달러 약(弱) 유로’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이치방크는 2017년까지 유로화 가치가 85센트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로존의 채권 수익률이 낮아지고 양질의 채권 공급이 줄어 유로존의 자본 엑소더스(탈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서다.



수퍼 달러의 일격에 녹다운 위기에 처한 곳은 신흥국이다. 시장에서 슬슬 발을 빼는 투자자들이 신흥국 통화를 팔아치우기 시작하면서 통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헤알화는 최근 3개월간 달러 대비 14.48%나 떨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는 13년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멕시코 페소화는 최근 5거래일 동안 4% 가량 하락했다. 터키 리라화도 몇 주째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강달러는 신흥국 위기의 전조”라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예상대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 글로벌 금리 통화 책임자인 데이비드 우는 보고서에서 “달러 강세가 2013년 신흥국 통화 가치 급락을 야기한 ‘긴축 짜증’을 재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긴축짜증’은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뒤 신흥국 시장이 요동친 것을 말한다. 이들 국가에서는 주식과 채권, 통화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가 나타났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공, 브라질 등 ‘5대 취약국’이 직격탄을 맞았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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