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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조 수주 세계 6위 안주 말고 이젠 고부가 설계시장 진출을

중앙일보 2015.03.11 01:43 종합 1면 지면보기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 대참사로 이어질 뻔한 걸 우리가 잡아냈죠.”


해외건설 50년, 신성장 50년

 대우건설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중심가인 빈자이 지구에 짓고 있는 274m 높이의 IB타워. ‘하이테크 건축의 명가’로 불리는 영국 노먼 포스터가 기본 설계한 최첨단 건물이다. 주거·업무공간을 건물 내부 한쪽에만 두는 비대칭 구조다. 자연히 하중도 비대칭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초고층을 지어 본 경험이 적은 현지 업체가 상세 설계 때 이를 놓쳤다. 이대로 시공했다면 건물이 기울어질 위험이 컸다. 대우건설 이기순 IB타워 현장소장은 “3차원 시뮬레이션으로 설계 오류를 찾아내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공법(기울어짐을 제어하는 기술)을 자체 개발해 시공했다”고 설명했다. 완공 후의 모습까지 예측할 수 있는 첨단 기술로 참사를 막은 셈이다.



 값싼 노동력을 앞세워 길 놓고 집 짓던 한국 건설회사가 2000년대 들어 ‘첨단 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순수 국내 기술로 높이 828m의 세계 최고층 빌딩을 올리고 세계 유명 건설사가 모두 포기한 비정형 건축물을 세웠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신도시를 조성하고 ‘토목의 꽃’으로 불리는 사장·현수교와 같은 세계 최장의 첨단 교량도 놓고 있다.



 비약적인 기술 발전 덕에 수주금액도 일취월장했다. 지난해엔 해외에서 하루 2개꼴인 708개 사업, 총 660억 달러(약 73조9000억원, 세계 6위)를 수주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2% 수준이었던 해외 건설시장 점유율은 7.8%(미국 ENR지 조사)까지 높아졌다.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성장했다. 백영선 해외건설협회 부회장은 “건설이 첨단 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기술집약형 대형 사업 수주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건설업계는 요즘 안팎의 도전에 직면했다. 기술력은 세계 최고가 됐지만 외부 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공 분야에만 몰려 있기 때문이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인도가 저가 공세로 시공 분야를 잠식해 오고 있다”며 “앞으로 50년을 위해선 기본설계나 현장 관리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도 적극 진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컨대 국내에선 시공과 설계가 관련법상 철저히 분리돼 있어 양쪽의 노하우가 접목되기 힘든 구조다. 한 대형 건설업체 임원은 “시공 경험이 설계 쪽에 전달되지 않다 보니 설계 따로, 시공 따로인 게 국내 현실”이라며 “이 때문에 국내에선 설계 변경이 잦은 편인데 이 벽을 우선 허물어야 국내 건설업체들이 기본설계 등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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