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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재개발, 청주시 곳곳에 폐가촌

중앙일보 2015.03.11 00:38 종합 21면 지면보기
청주시 사직동 재개발 사업이 7년째 답보 상태에 빠지면서 빈집과 허물어진 건물들로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한 주민이 폐허로 변한 주택가를 지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4일 오후 충북 청주시 사직동 재개발구역. 단독주택가 골목에 들어서자 라면 봉지와 소주병, 검게 그을린 벽돌 등이 보였다. 타다 남은 연탄에선 쾌쾌한 냄새가 났다. 공터 곳곳엔 마른 풀과 정리되지 않은 건물 잔해가 뒤엉켜 있었다. 빈집 안에는 쓰레기가 가득했다.

시공사 못 찾은 곳만 22곳
사업 늦어져 여기저기 빈집
"조합 해산" "재건축 계속"
주민들, 개발 놓고 갈등도



 이런 폐가가 사직동에는 많다. 이곳은 2008년 주택재개발지구로 지정됐지만 사업은 7년째 답보 상태다. 여관·상가·주택 등의 소유주가 건물을 팔고 떠나면서 ‘폐가촌’이 됐다. 한때 여관 골목으로 성업했던 마을은 깨진 유리창과 반쯤 허물어진 건물이 즐비한 슬럼가로 변했다. 곳곳엔 ‘빈 집 아님’ ‘사람 살아요’란 문구가 걸려 있다. 주민 현화영(83·여)씨는 “빈집인 줄 알고 쓰레기를 하도 버리는 바람에 임시로 취한 조치”라고 말했다.



 청주시 도심 지역에 재개발·재건축 지구가 수년째 방치되면서 도심 속 공해로 변하고 있다. 주민들은 “재개발을 못하더라도 우리 동네를 우범지대로 만들지 말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는 2006년과 2008년 노후한 마을 38곳을 주택재개발·재건축 또는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 등으로 지정했다.



 시는 추진위원회나 조합을 구성하지 못한 12곳을 중도에 사업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아직 24곳이 남았다. 이 중 탑동·모충동 지구 2곳 제외한 나머지 구역은 조합을 설립해 놓고도 시공사를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 재개발이 성과를 내지 못한 마을은 공·폐가가 득실대는 우범지대로 전락했다.



 사건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4월 모충동 재개발구역 빈집에서 2년 전 가출 신고된 50대 남성이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청주시 사직동 재개발구역 폐가에서는 50대 남성이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주민간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빈집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다 이웃간 다툼이 벌어지는가 하면 폐점된 여관에서 숙식을 하던 노숙인들과 주민들 간에 다툼도 생기고 있다. 밤이 되면 청소년들이 술판을 벌이거나 싸움을 하는 탈선 장소로 변한다. 김영선(57)씨는 “해가 지면 밖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주민이 불안해 한다”며 “고물과 폐지를 주워 아예 빈집에 저장해 놓는 사람들도 있다”고 토로했다.



 재개발구역 해제를 놓고도 주민이 대립하고 있다. 한쪽에선 “조합을 해산하자”는 현수막을 걸고 동의서를 받고 있고 반대 측은 “재개발을 반대하지 말라”는 전단지를 뿌리며 맞서고 있다. 충북참여연대 오창근 사회문화국장은 “재개발 계획이 장기 표류하면서 지역 주민의 주거환경이 점점 악화되는데도 관계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며 “안전 사각지대가 된 도심 재개발지역이 이젠 주민 갈등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청주시 주거정비과 윤광한 팀장은 “재개발지구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건축 용적률을 높이는 등 조례를 개정했지만 경기 침체로 시공사가 나서지 않고 있다”며 “조합 자진해산 기한인 내년 1월 말까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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