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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사외이사는 '사측이사'

중앙일보 2015.03.11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1. 지난해 3월까지 하나은행 사외이사로 활동한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은 2014년 임기 중 개최된 이사회 2번에 모두 불참했다. 참석률 0%다. 하지만 하나은행이 지난 5일 공시한 연차보고서에는 그의 연간 활동시간이 총 1시간 30분으로 기록됐다. ‘후임 사외이사 후보를 논의한 간담회에 한 차례 참석했다’는 이유다. 하나은행이 지난해 우 회장에게 지급한 보수는 총 1160만원. 기본급 1060만원에 전년도 12월 이사회, 간담회 참가수당을 회당 50만원씩 두 차례 계산해 줬다. 결과적으로 시급 773만원짜리 간담회에 참석한 셈이다.

금융권 지배구조 보고서로 본 행태
신한·우리·하나·농협 이사회 땐
무조건 찬성에 '특이 의견 없음'
순익 2011년의 반인데 억대 연봉
자신이 속한 단체엔 기부금 수억



 #2. 신한금융은 지난 2011년 3월 김기영 당시 광운대학교 총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듬해 자회사인 신한은행을 통해 광운학원에 2억원짜리 ‘통 큰 기부’를 했다. 이는 신한은행이 올 1월 ‘따뜻한 금융’을 모토로 임직원들이 1만원씩 모아 아동·교육 지원사업에 기부한 돈과 같은 액수다. 김 전 총장은 이달 말 사외이사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사외이사들의 ‘황제대우’가 낱낱이 공개됐다. 이달 초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각 회사가 차례로 공시한 ‘지배구조 연차보고서’를 통해서다. 4대 지주 중 보고서를 등록한 세 곳(신한, KB, 하나)과 5대 은행(신한, 국민, 우리, 하나, 농협) 보고서를 살펴보니 지난해 사외이사들의 평균 연봉은 2638만~8675만원이었다. 기본급과 상여금, 기타 수당 등으로 이뤄진 ‘보수 총액’만 계산한 금액이다. 여기에 이른바 ‘거마비’로 불리는 업무활동비, 건강검진 지원, 차량·사무실 제공 등 ‘기타 편익’을 합하면 수백~수천만원 가량이 더해진다.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사외이사는 2014년 11월까지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김중웅 전 현대증권 회장이었다. 주전산기 문제로 촉발된 KB사태 수습을 위해 이사회가 잦았고, 기본급(5900만원) 외에 수당 3800만원을 더 받아 보수총액이 9700만원을 기록했다. 1회 지원받은 건강검진비와 회의 참석 때 이용한 기사딸린 승용차 이용료까지 포함하면 억대 연봉을 받아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시급왕’은 앞서 소개한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이다. 하나은행 측은 “우 회장이 개인적 사정으로 이사회에 불참했다”고 설명했다.



 명목이 불분명한 기부금도 사외이사들이 몸담고 있는 단체에 수백만~수억원씩 흘러갔다. KB금융과 국민은행은 사외이사 4명의 취임 전후에 총 2억8000만원을 기부했다. 신한금융은 김 전 총장 등에게 2억700만원을 썼다. 상대적으로 사외이사 연봉이 낮은 우리은행은 기부금(총 1억4800만원)에 비교적 인심이 후했다. 하나은행은 교수로 활동 중인 사외이사들이 몸담은 대학 2곳에 5억2400만원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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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나 기부금보다 더 큰 문제는 사외이사들이 받아가는 돈만큼 은행 경영에 시간을 할애하고 기여하는지다. 백이면 백 찬성표만 던진다는 ‘거수기’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 사외이사들은 지난해 이사회에서 단 한 건도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참석이 곧 찬성표를 의미했다. 예외적으로 KB사태를 겪은 국민은행만 지난해 5월 당시 주전산기 전환사업의 적절성을 놓고 3명(오갑수, 강희복, 송명석)의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냈다. 실제 이사회에서 의미있는 토론과 논의가 이뤄지는지도 미지수다. 자산건정성 제고, 고객정보 관리, 3개 년도 경영계획안 등 다양한 현안이 각 지주·은행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왔지만 활동내역에는 모두 ‘특이의견 없음’ ‘의견 없음’으로 기록됐다. 그런데도 금융사 사외이사 대부분은 자기 평가와 직원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다. 내홍이 심했던 KB금융 사외이사 두 명만 자체 평가에 이례적으로 3등급(B등급)을 줬다.



 사외이사는 단어 그대로 회사 밖 이사회 구성원이다. 감사·평가보상·리스크관리·CEO추천 등 금융사 경영 전반에 관여한다. 하지만 정피아·관피아 논란을 일으킨 전직 관료 출신과 학계·법조계 인사들로 구성되는 게 금융권 관례다. 명지대 문종진(경영학) 교수는 “정피아, 관피아 같이 권력기관에 속했던 사람이 금융회사 사외이사로 대거 오는 이유는 한국 금융당국의 불투명한 규제 때문”이라면서 “금융사 입장에서는 규제 문제를 풀어줄 대외 로비성 사외이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은행권 당기순이익은 6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2011년 11조8000억원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수수료 면제나 무료 SMS등 대고객 서비스는 하나씩 줄이면서 사외이사에게만 돈을 물쓰듯 쓴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책의 일환으로 사외이사의 활동 내용과 연봉을 주주총회 20일 전까지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118개 금융회사가 모두 해당된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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