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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장관, 왜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됐나

중앙일보 2015.03.10 01:10 종합 10면 지면보기
제 나이는 마흔여섯 살입니다. 3·1운동 50주년이던 1969년 3월 1일에 태어났습니다. 처음 이름은 ‘국토통일원’이었지만 지금은 ‘통일부’로 불립니다.


[정치 Who & Why] 46년간 34명 거쳐가 … 평균 재임 15개월
한때 NSC 위원장 겸임 … 안보 핵심 역할
이명박 정부서 '없애자' 주장 나오며 꺾여
현 정부서도 통일부 입지 여전히 좁아
류길재 "평양 특사" 제안했다 퇴짜 맞아

  불쑥 인사드린 이유는 답답해서입니다. 올해는 광복과 분단 70주년이 겹친 해입니다. 남북관계에 뭔가 돌파구가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한숨만 나올 지경입니다. 마침 11일에는 홍용표(51)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지난 46년간 류길재 장관까지 34명의 장관(평균 15개월 재임)이 거쳐 갔습니다. 장관 한 명 바뀐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질지 확신이 없습니다.



 류 장관이 얼마 전 사석에서 “통일부 장관은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는 말을 했다더군요. 표현이 와전됐다지만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소문이 났을까요. 대화파로 분류되는 류 장관은 남북관계 돌파구를 열기 위해 지난해 12월 말 어렵사리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지요.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류 장관=“ 제가 평양에 특사로 가겠습니다.”



 ▶박 대통령=“(남북관계를) 비밀리에 하지 않겠다는 건 정부의 원칙입니다.”



 ▶류 장관=(※특사 파견의 필요성을 부연해서 설명)



 ▶박 대통령=“좋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일어서면서)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공안 검사 출신의 대통령 비서실장, 군인 출신의 국가안보실장이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류 장관의 돌발 제안이 먹히긴 어려웠을 겁니다. “통일 대박”이라는 대통령의 음성이 귓전을 때리지만 통일부의 대박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따지고 보면 46년 역사에서 ‘볕 든 날’은 극히 드물었죠. 출범 당시의 목적은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박정희 정부에서 북한과의 체제 대결에 맞설 역량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정원 45명(현재는 본부 기준 236명, 중앙부처 중 최소 인원)의 초라한 규모에 서울 장충동 한국반공연맹(현 자유총연맹) 건물에 세 들어 지냈죠.



 출범 때 정부 부처라기보다는 정책 연구기관에 더 가까웠죠. 72년에 합의한 역사적 7·4 남북공동성명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작품이었지, 통일부의 작품이 아닙니다. 줄곧 국가안전기획부 소속이던 남북대화사무국을 통일부가 넘겨받은 건 전두환 정부 때인 80년이고, 통일 업무의 법적 근거(남북교류협력법)와 예산 뒷받침(남북협력기금법)이 이뤄진 건 노태우 정부 때인 90년에 와서입니다. 이홍구 전 총리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이던 94년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무산됐는데, 그때도 실은 안기부 채널이 막후 대화를 주도했습니다.



 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당시 박재규 장관은 회담 추진위원장으로 맹활약했죠. 2004년 노무현 정부 때는 당시 대선주자였던 김근태 의원과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통일부 장관 자리를 놓고 경쟁했을 정도였습니다.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해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기능을 담당할 만큼 막강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상전벽해가 됐습니다. 일부 인수위원이 “통일부를 없애자”고 주장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습니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도 대화파의 입지는 좁았습니다. 그해 6월 류길재 장관이 한 모임에서 “외롭고 쓸쓸하다”고 한 말이 당시 분위기를 대변했습니다.



  46주년을 기념해 지난 2일 통일부는 핵심가치(소명·공감·도전·창의) 선포식을 가졌습니다. 류 장관은 “지난 1년 동안 통일부의 정체성을 찾아내기 위해, 지향점을 모색하기 위해, 자부심을 드높이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불혹을 넘긴 통일부가 아직도 정체성이 분명하지 못하고, 지향점이 모호하고, 자부심이 약하다는 얘기 같아 목이 콱 막혔습니다. 홍용표 장관 후보자를 맞는 심정은 이렇게 복잡다단합니다. 통일부에 봄날은 올까요.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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