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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일본의 평화 망상, 셀프 모니터링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5.03.10 00:06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헌
도쿄 특파원
2년 전 일본 내각부가 의식 조사를 했다. ‘일본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을 세계 7개국 13~29세 젊은이들에게 던졌다. 몇 개 보기를 주고 고르도록 했다. 관심을 끈 건 ‘일본인은 평화 애호적’이란 답을 택한 사람의 비율이었다. 일본 젊은이는 35%가 ‘평화 애호적’이라고 답했다. 반면 같은 보기를 고른 나머지 6개국 젊은이는 평균 15%에 그쳤다. 미국이 22%로 그나마 높았고 영국은 18%, 스웨덴은 7%로 나타났다. 한국 젊은이들의 평가는 예상대로 가장 박했다. 4%만이 ‘일본인은 평화를 사랑한다’는 의견에 동조했다.



 평화에 대한 일본인 스스로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심리학에 ‘셀프 모니터링(Self Monitoring)’이란 용어가 있다. 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의식하고 그에 따라 말과 행동을 제어·조정하는 걸 뜻한다. 질문을 받게 되면 상대방의 생각을 미리 파악하거나 자신의 이미지를 고려해 좋은 쪽으로 답변하는 식이다. 학생들은 요즘 같은 봄철 신학기에 적극적으로 셀프 모니터링을 하게 된다. 모니터링 능력이 뛰어날수록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친구들과도 금방 친해지는 경향이 있다. 다만 상황에 따라 태도를 쉽게 바꾸다 보면 오히려 신용을 잃을 수 있다. 모니터링 능력이 떨어지면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해 빈축을 사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일관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메이지(明治)대 국제일본학부 스즈키 겐지(鈴木賢志·사회심리) 교수는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일수록 대부분 셀프 모니터링 능력이 높다”고 설명했다. 일본인은 집단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따돌림당하지 않도록 처신하라는 훈련을 어린 시절부터 받는다. 스즈키 교수는 ‘주간동양경제(週刊東洋經濟)’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일본인은 헌법 9조(평화헌법)가 있다는 이유로 ‘평화 망상’이란 비판을 받을 정도로 스스로를 ‘평화 애호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고 분석했다. “그것은 어쩌면 무서운 독선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5일, 보수 성향이 강한 요미우리신문이 올해 종전 7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후 일본이 평화 국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고 답변한 사람이 81%나 됐다. 문제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등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응답자가 5%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권이 지난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데 이어 올해 자위대 해외 파병을 본격 추진하기 위한 안보 관련 법제 정비에 나섰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일본을 평화 국가로 여기고 있다. 아베 총리가 틈만 나면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평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현혹됐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 구상은 치밀하고 체계적이다. 아베 총리는 자국민 보호와 세계 평화 공헌을 명분으로 평화헌법 자체를 뜯어고칠 계획이다. 평화 애호적이라고 생각하는 일본 국민들의 냉정한 셀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이정헌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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