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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따끈한 국물'의 추억

중앙일보 2015.03.10 00:03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줄기세포 조작 파동이 한창일 때 황우석 교수가 답글을 보냈다. “선생님의 칼럼이 참았던 눈물을 흐르게 합니다… 언제 따끈한 국물이라도 함께 하지요.” 황우석 교수를 대책 없이 옹호한 필자의 글은 ‘잘못된 칼럼’의 전형으로 교과서에 오르내린다. 물론 ‘따끈한 국물’을 나누진 못했고 대신 쓴 소주잔을 홀로 들이켜야 했다. 따끈한 국물을 두고 얘기를 나눴다면 그의 달변에 완전히 매수당했을 수도 있다.



 한국인이 서로 특별한 관계를 확인하고자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이것이다. ‘우리 밥 한번 먹자.’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날아오는 이 제안은 우정 회복, 공유 기억을 확인하고 싶은 풋풋한 욕망의 시그널이다. 그런데 직무 관련 이해당사자끼리 오가는 이런 제안에는 분명 목적이 숨어 있다. 설득과 매수, 의기투합과 협잡. 그런데 선의의 담합이라면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소통과 맥이 닿고, 이기적 투합이라면 부정청탁이나 향응 위험이 있다. ‘따끈한 국물’이 소주와 어묵에 그치면 미담(美談)이 되고, 맥주와 매운탕이면 협잡이 된다. 지난주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김영란법은 미담과 범죄 사이를 어떻게 구별할까.



한국은 결코 청렴국가가 아니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2014년 한국의 부패 지수는 175개국 중 43위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4개국 중 27위, 태국과 대만보다 낮으니 부패척결은 시급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부패 지수가 OECD 평균이 된다면 1인당 국민소득은 140달러 증대되고 평균 경제 성장률이 0.65%포인트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마침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정치적 결단을 대서특필했다. ‘뇌물이 오랫동안 문화의 일부가 돼왔던 한국적 풍토를 바꾸려는 획기적 사건’이라는 것. 백 번 옳은 얘기다. 청렴국가를 향한 개혁은 범시민적 소망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멍든 뭇 시민들의 막힌 가슴을 이렇게라도 뚫어야 했다.



 그런데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입법 즉시 헌법소원을 냈다. 부정청탁·향응을 가름할 정확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 즉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한국교총도 일전을 준비 중이고, 주요 언론사들도 느지막이 볼멘소리를 냈다. 아무리 뜯어봐도 부실 입법이다.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국회. 국회는 ‘법의 정신’을 위반했다. 패가망신과 처벌을 동반하는 형법이기에 더욱 그렇다. 형법은 범죄 구성 요건이 분명해야 하고 환부의 원점만을 겨냥해야 한다. 과녁의 최소화와 효과의 극대화,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관계 전체가 혐의 대상이 된다. 법의 토대인 사회윤리까지를 범죄시하는 그런 입법은 법치주의가 아니라 법만능주의다. ‘언론도 넣고 교사도 넣어라!’ 이 무책임한 발언은 모든 국민의 행동을 이 법으로 손보겠다는 입법기관의 폭력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그런 의원들을 뽑았다.



 이제 공무원·교원·언론인은 이해관계자와 만날 때 짜장면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탕수육·오향장육을 먹고 녹차라테를 마시면 위험해진다. 3만원을 넘기 때문이다. 더치페이를 하면 되겠지만 그 증거를 보관해야 임의연행을 피할 수 있다. 이해당사자인 국민도 마찬가지다. 1년9개월 뒤 친지를 만날 때에도 검찰·경찰의 그림자에 신경써야 한다. 아무도 안 만나고, 업무는 서류로 하면 된다. 공무원의 미덕인 현장행정, 발품 파는 유별난 기질은 범죄 구성 요건이 되고 교사가 학부형과 만나도 혐의를 산다. 기자는 심층취재를 포기하면 된다. 당사자를 만나 얘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따끈한 국물’이 차려져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겨울왕국’이 도래했다. 부패척결을 위해 스스로 자청한 포박이 밥과 술로 소통하는 한국적 관습을 송두리째 결빙시킬 것이다. 이 ‘겨울왕국’은 과연 한국을 ‘청렴국가’로 세탁할 수 있을까? 반부패법인 김영란법은 다른 소통 방법을 개발하지 못한 우리에게 자칫 ‘소통금지법’이 될 수도 있다. 모두 입을 봉한 청렴국가, 제보자가 득실거리는 국가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CCTV와 블랙박스로 무장한 한국 사회에서 서로를 생존형 파파라치로 만들 이런 법을 떡하니 내놓은 국회에 ‘법학개론 100시간 의무 수강’을 명령해도 좋겠다. 대통령 거부권, 이것이 남았다.



 애초에 법을 초안한 김영란 서강대 교수는 ‘원래 공무원에게만 적용하려 했는데…’라고 여운을 남겼다. 교사와 언론인만을 꼬집어 우겨 넣은 이유도 여전히 석연치 않다. 공무원에게 이 엄혹한 룰을 적용시키려면 ‘겨울왕국’을 버틸 수 있게 처우개선이 따라야 한다. 안빈낙도(安貧樂道) 아니면 처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 직업군에는 인재가 모이지 않는다. 아예 국회를 겨울왕국으로 유배보내는 것은 어떤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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