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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회는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중앙일보 2015.03.05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3일 국회가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를 없던 일로 하고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법안을 뒷전으로 미룬 것은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득표에 골몰하면서 아이들의 안전과 국민 건강을 내팽개쳤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국회의 존재 자체가 의심이 들 정도다.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나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4월 국회 처리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의 황당한 처리 과정을 보면 약속이 지켜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CCTV 의무화를 비롯한 어린이집 안전 강화를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지난달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한 것이다. 3일 법사위에서 웹카메라 설치 조항을 삭제해 흠집을 내더니 본회의에서 의원들이 자리를 뜨거나 기권하는 수법으로 부결처리 했다. 보건복지위 소속 일부 의원은 기권에 합류했다. 상임위에서 찬성할 때가 일주일 전인데 그리 했다. 또 천신만고 끝에 복지위를 통과한 건강증진법은 법사위에서 반대 토론도 없이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겨 처리를 무산시켰다. 누가 봐도 둘 다 정상적인 과정을 밟았다고 보기 어렵다.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지난 1월 인천 K어린이집 교사의 ‘핵 펀치’ 사건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CCTV 의무화는 2005년 이후 10번째 도전이다. 이뿐 아니라 보육교사 처우 개선 및 인성교육 강화, 내부고발자 보호조치 등의 대책을 담고 있다. 이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 이번 법안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필요조건은 된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4일 “반대 또는 기권한 의원들이 어린이집의 압박 때문에 그리 한 게 아니라 나름 소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일부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집 원장들이 지역구 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의원들은 국회 전광판의 본인 이름에 붉은색(반대), 노란색(기권) 등이 켜진 것을 원장들이 봐주길 기대할 것이다.



 담뱃갑 경고 그림은 2002년 이후 11번째 도전이다. 13년 만에 복지위를 넘었으니 일사천리로 통과할 걸로 기대했다. 법사위에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흡연권이니, 행복추구권이니 하는 해괴한 논리로 가로막았다. 경고 그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효과적 금연정책이다. 호주·캐나다 등 77개국이 도입했다. 금연 분야 비전문가들이 모인 법사위에서 “금연효과 검증이 안 됐다”며 막은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담배회사의 로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국회는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 안전과 국민 건강은 뒷전이고 표만 좇는다면 이익단체의 대표 그 이상도 아니다. 표는 좇는다고 오는 게 아니다.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이미 인터넷에는 반대·기권 의원 명단이 나돌고 있다. 국민들은 4월 국회에서 두 가지 법안에 대해 누가, 어떻게 표결을 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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