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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힐러리 사태로 본 e메일 글로벌 매너

중앙일보 2015.03.05 00:02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힐러리 클린턴 미국 전 국무장관의 2016년 대선가도에 이상 신호가 켜졌다. 발단은 e메일이다. 국무장관 재직 당시 그가 부처 공식 e메일 계정이 아닌 개인 e메일 계정을 사용해 업무를 했다는 게 문제가 됐다. 국내에서 관련 내용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공직자나 기업체 직원들이 G메일 같은 개인 e메일 계정을 사용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우리 문화에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워싱턴에선 이번 사태를 클린턴의 심각한 흠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일(현지시간) “힐러리가 늪(morass)에 빠졌다”고 표현했다.



 2008년 대선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사설을 통해 클린턴 공식 지지를 선언했던 뉴욕타임스(NYT)까지 “부끄러운 일(shame)”이라며 법률 전문가들을 인용해 “심각한 위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미국 언론이 하나 되어 ‘클린턴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클린턴은 대변인 닉 메릴을 통해 “비밀 유지 원칙에 어긋날 내용은 없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NYT 등은 “불충분한 해명”이라며 싸늘하게 반응했다.



  미 연방정부 관리들이 주고받은 e메일은 연방법에 따라 정부기록물로 규정돼 해당 부처 서버에 저장된다. 이를 위해 해당 부처의 공식 계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게 규칙이지만 클린턴 장관은 개인 e메일로 처리한 내용을 복사해 정부에 제출했다는 게 문제의 골자다. 염두에 둬야 할 건 미국 및 유럽 등 에선 ‘업무 메일은 회사 e메일 계정을 이용한다’는 게 상식을 넘어 원칙이라는 점이다.



 다국적 기업에 근무하는 한 재미교포는 통화에서 “한국인의 경우 개인 e메일 계정을 스스럼없이 업무에 사용하는 사례가 많은 것 같은데, 이 경우 프로답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무 e메일은 회사의 기록이며 서버에 남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한 외국인 특파원은 “한국 정부 부처 공무원에게 취재 e메일을 보냈더니 회신이 그의 G메일로 와서 의아했다”며 “이유를 물으니 ‘위에서 모니터당할 수도 있어서 껄끄럽기 때문’이라더라. 더 이해가 안 됐다”고 털어놨다.



 지난달 기자가 스위스 소재 국제기구 직원에게 받은 e메일에 그의 개인 주소가 찍혀 있었다. “ 개인 사정으로 회사 e메일을 쓸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라는 설명이 추신으로 붙어 있었다. 회사 계정을 사용하는 글로벌 매너를 못 지켜서 미안하다는 거였다.



 아사히(朝日)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 아에라는 지난해 7월 21일자에서 ‘당신의 업무 e메일은 NG투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회사 e메일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요, e메일 말미엔 회사 주소를 우편번호까지 적는 게 예의”라고 소개했다. ‘e메일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로벌 e메일 매너 하나만 지키면 개인뿐 아니라 회사·국가의 신뢰도도 높아질 수 있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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