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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남초 예능'이 보여주는 것

중앙일보 2015.03.05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TV를 틀 때마다 남자밖에 안 보인다. 특히 예능은 정도가 심하다. 지상파 연예오락 프로 54개에서 고정 출연자 중 여자가 더 많은 프로는 없고, 전원이 남자인 프로도 8개나 된다. JTBC ‘비정상회담’ 역시 12명 출연자들과 진행자가 모두 남자다. ‘나는 남자다’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처럼 아예 남자를 제목에 박고 가기도 한다.



 PD들이 말하는 ‘남초(男超) 예능’의 이유는 이렇다. 텔레비전의 주요 시청자층이 여자라는 것. 동성보다 이성에 더 많은 호기심이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기에 출연진이 남초가 되는 게 안전하다. 관찰을 기반으로 하는 리얼리티 예능이라면 더 남자가 선호된다. 아무래도 여자보다는 남자가 카메라 앞에서 더 자연스러울 수 있기 때문. 며칠 세수 안 한 채 돌아다니고 까치집 머리가 된다는 건 여배우·걸그룹의 ‘신비주의’를 지키기에 맞지 않는 조건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될 것이 의외성이다. 출연자의 엉뚱한 조합, 비현실적인 설정, 거기에서 벌어지는 돌발 상황이 ‘그림’을 만든다. 중년 탤런트가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학교에 가고, 굳이 정글 오지를 찾아 서바이벌을 벌이는데 무슨 논리적 의미가 있겠나. 그저 자체가 볼거리다.



 이런 의미에서 근래 유난히 많아진 육아나 요리 예능은 이런 요소들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아빠 혼자 세 쌍둥이를 데리고 24시간을 보내거나(‘슈퍼맨이 돌아왔다’), 남자 둘이 대형마트와 배달 프렌차이즈가 멀리 떨어진 산골과 어촌에서 먹거리를 챙겨야 하는(‘삼시세끼’) 미션으로 의외적 상황을 이끌어낸다. ‘삼시세끼’의 나영석 PD도 이를 인정한다. “남자는 요리를 잘 못한다, 그래서 좌충우돌한다, 라는 콘셉트로 시작한 프로예요. 솔직히 이번엔 차승원씨가 음식을 너무 잘 만드는 게 당황스러웠지만 이것 역시 ‘남자가 이렇게 잘해?’라는 반응이 되니까요. 그러니 앞으로도 남자 출연자만 섭외할 게 당연하고요.”



 이들 프로의 시청률은 고공행진 중이다. 그런데 마냥 웃고 보면서도 한 끗이 씁쓸하다.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아직도 남자의 육아가 우리 사회에서 낯선 풍경인가 싶어서다. 객관적 지표도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요국 남성의 집안일 시간을 비교해 보니 한국 남성이 조사 대상 29개국 중 꼴찌를 차지했단다. 하루 중 육아와 집안일 등 무급노동에 들인 시간이 45분, OECD 평균은 141분이었다. 특히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하루 10분이라는 수치도 나왔다. 이쯤이면 ‘가사노동=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예능 프로가 비틀어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고정 시청자라면 출연진을 통해 알게 될 터다. 육아든 요리든 결국은 연습에서 숙련된다는 것을, 그저 누구나 시간을 들이고 시행착오를 통해 몸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부터 이를 탑재하고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웃자고 만든 TV프로에서 죽자고 깨쳐야 할 진실 하나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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