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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평범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5.03.05 00:01
[이코노미스트]소박한 삶이 오히려 주목받는 시대 … ‘웜 마케팅’ 부상



“한국을 보면 전 국민이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의 상태인 것 같다”

몇 년 전 뉴욕타임스에서 한국을 묘사한 표현이다. 그렇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학생·직장인·주부 할 것 없이 모두 상시적 불안과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은 시험과 입시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창 새로운 미래를 꿈꾸어야 할 대학생들은 완벽한 스펙을 갖추고도 번번이 취업의 문턱에서 낙방하기 일쑤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직장인 우울증은 이미 위험한 수준에 도달 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우리의 인생은 점점 더 고달파진다.



동서식품 ‘핫초코 미떼-부녀편’ TV 화면 캡처.
경제 역시 그야말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토탈 푸어’의 시대를 맞고 있다. 집값 때문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뿐만 아니라 참으로 다양한 ‘푸어’가 등장했다. 빚에 허덕이면서도 교육비를 과다하게 지출하느라 경제고에 시달리는 ‘에듀푸어(Education Poor)’, 과다한 의료비 지출이 부담스러운 ‘메디푸어(Medical Poor)’, 투잡·쓰리잡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해도 푸어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워킹푸어(Working Poor)’ 등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빚 갚기 급급한 직장인들에게 내일과 희망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평범함을 열망하는 사람들



이러한 팍팍함 속에서 사람들이 찾아나서는 것은 결국 ‘일상 속의 따뜻함’이다. 평범함이라는 그 흔했던 가치가 이제는 손에 쥐기 힘든 특별한 가치임을 이제야 많은 사람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의 일상은, 그동안 우리가 가장 기본적이고 평범하다고 여겼던 것들로 다시금 채워지기 시작한다. 값비싼 자동차, 고가의 명품 가방을 갖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이젠 작고 소박한 일상을 열망한다. 내 손으로 직접 소박한 밥상을 차려 가족과 함께 나누는 일상적 행복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것이 됐다.



섹시퀸의 대명사였던 가수 이효리는 이러한 흐름을 불러온 대표적 인물이다. ‘소길댁’이라는 닉네임이 더 자연스러운 이효리는 지난 몇 년 사이, 가지고 있던 명품백을 내다 팔았고 채식을 시작했으며 제주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2014년 5월 개설 이후, 하루 평균 10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는 그녀의 블로그는 스타의 화려한 삶이 아닌 제주도에서의 소박하고 자연 친화적인 평범한 일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소박하지만 부유하고, 부유하지만 다를 것도 없다”는 그녀의 글은 마치 욕망과 이상 사이에서 떠돌다가 비로소 평범함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 현대인들의 자기고백과 같은 성찰이 느껴진다.



일반인들도 소박한 삶을 되돌아본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개설하는 강좌의 종류만 봐도 그렇다. 롯데백화점은 2014년 가을 학기에 ‘킨포크’와 관련한 강좌를 전년대비 3배 이상 늘렸다. 본점과 잠실점에서는 채소를 직접 가꿔서 먹을 수 있는 ‘베란다 채소밭 가꾸기’ 강좌를 마련하는가 하면, 가족의 모습을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는 ‘가족과 함께 만드는 추억’, 집밥을 주제로 한 ‘건강한 집밥 만들기’ 등의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음식 명인과 함께 식재료 산지를 직접 찾아가 설명을 듣고 건강한 밥상을 체험할 수 있는 강좌를 10여 개를 신설했다. 일상을 돌아보고 평범함에서 가치를 찾는 움직임이 우리 생활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따뜻함을 다루는 감성 잡지도 등장했다. [킨포크(Kinfolk)]나 [어라운드(Around)]가 대표적이다. 감성 잡지의 대표주자 [킨포크]는 한국어판이 정식 출간되기 전부터 원서의 반응이 뜨거워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던 잡지다. 킨포크는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한 남자의 블로그로 시작되어, 이후 작가·화가·농부·사진작가 등 40여 명이 모여 만든 작은 모임의 이름이다. 이들은 텃밭에서 재배한 식재료로 친환경 요리를 만들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눠먹고 조리법을 공유하며 느긋한 삶을 지향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엮은 잡지 킨포크는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제는 잡지 이름을 넘어 느긋한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평범함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갈망은 대중문화에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특히 온라인에서 연재하는 웹툰에는 유독 일상적인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백하게 풀어내는 주제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인기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에 등장하는 부부의 모습에는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도, 웹툰 특유의 과장과 유머코드도 없다. 부부 사이에 흔히 발생하는 시니컬한 말씨름, 잦은 투닥거림이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보는 이들에게 ‘우리가 이만큼 행복하다’고 오버하거나 혹은 ‘이렇게 살아야한다’고 훈계하지 않고, 그저 ‘우리는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 있다’며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일상을 다루는 콘텐트 인기



이러한 변화는 기업이 소비자를 설득하는 광고 커뮤니케이션에도 드러난다. 지난 12월 한국광고총연합회가 선정한 베스트 광고는 다름 아닌 동서식품의 ‘핫초코 미떼-부녀편’이었다. 겨울 밤 소파에 누워 졸면서도 딸의 귀가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 “다녀왔습니다”를 외치며 집에 들어오는 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온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발견한다. 급진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보다 차갑고 냉철한 이성적 이미지가 선호되던 예전과 달리, 따스하고 감성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웜 마케팅(worm marketing)’이 다시금 부상하는 것이다.



미래학자 리처드 A. 스웬슨의 말처럼 문명의 진보란 본래 사람들의 여유를 앗아가기 마련이다. 세탁기가 발명되어 사람들이 빨래라는 가사 노동에서부터 해방되었지만, 늘어난 시간은 또 다른 노동으로 채워져 결국 우리의 삶에 여유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잃어버린 평범함을 되찾기 위해 삶의 진정한 가치를 탐색하려는 사람들. 조금 느리더라도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가족과 자아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일상을 재정비할 것이다. 이들에게 럭셔리한 삶이란, 곧 가장 평범한 삶이다. 사람들이 미쳐 눈치채지 못한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기업만이 과잉 공급에 ‘지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전미영 -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 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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