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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장기하와 얼굴들

중앙일보 2015.03.02 07:40
















지난 설 전, ‘장기하와 얼굴들’이 디지털 싱글 앨범을 기습 공개했다.



‘새해 복’이란 곡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한번 들으면 자꾸 따라 부르게 되는 중독성이 강하다. 그들 특유의 위트와 풍자가 스며있는 가사가 유쾌하다. 노란색 노트에 만년필로 ‘어머니 아버지 새해 복’ 이라는 글씨를 쓰며 시작하는 뮤직비디오, 과연 ‘장기하와 얼굴들’답다.



“언니 오빠 동생 동창 친구 원수 아군 적군 이 사람 저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너도 나도 모두다

새해 복 만으로는 안돼

니가 잘해야지 <안돼>

노력을 해야지 <안돼>“



설 내내 흥얼거렸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새해인사에 ‘새해 복만으로는 안돼, 니가 잘해야지’라고 답하고픈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을 만나 사진을 찍은 건 2집 앨범이 발매된 2011년이다.

만나기 전 미리 보았던 ‘그렇고 그런 사이’의 뮤직비디오가 압권이었다. 손 만으로 메시지를 만든 기발한 뮤직비디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뮤직비디오에 걸 맞는, 적어도 그들이 세상에 하고픈 이야기를 담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 정도였다.



장기하·김현호·이종민·정중엽·이민기(드러머 김현호는 그 해에 입대를 했고 2014년 ‘눈뜨고 코베인’ 그룹에 합류했다), 다섯 명의 사내들이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분홍, 고동, 검정줄무늬, 파랑, 검정 윗옷을 입은 다섯 사내가 포즈를 취했다. 도드라진 옷 색깔에 짓눌린 황토 빛 얼굴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평상복 차림으로 여벌의 옷 없이 온 그들, 어디서 옷을 공수해올 방법도 없다. 해결책은 벗는 것뿐이다.



“윗옷을 다 벗고 하시죠.”

“네에?” 갑작스런 요구에 장기하 특유의 놀란 표정이다.

“뮤직 비디오를 미리 봤어요. 손으로만 만든 메시지가 충격입디다. 그것에 걸맞게 당신들의 얼굴과 손만으로 사진 메시지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그런데 옷은 왜 벗어야하죠?”

“입은 옷의 색깔들이 너무 강해서 얼굴표정을 다 잡아먹어요. 뭘 해도 표정이 드러나지 않네요.”

“얼굴만 나오고 밑에는 안 나오는 거죠?”

“어차피 밑 부분은 필요 없어요. 얼굴과 손만 필요합니다.”

얼굴 이하는 절대 안 된다고 다시 강조를 하며 죄다 윗옷을 벗었다.

상상해보시라. 각자 키 크기가 다른 다섯 사내가 얼굴 높이를 맞추고 윗옷을 벗은 모습을….

그것만으로도 전체 풍경은 재미있다. 전신을 다 찍고 싶은 충동이 자꾸 일어난다. 그러나 전신 풍경은 이들의 메시지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약속은 지켜야할 터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하고픈 이야기를 표정과 손짓으로 보여주세요.”

서로 제 각각의 표정을 보여준다. 그 표정이 그들의 음악으로 세상에 하고자하는 이야기다.



신문에 기사가 나간 후, 당시 취재했던 정강현 기자가 해당 기사에 대한 장기하 트위터의 내용을 보여줬다.

“이 사진 맘에 든다. 왠지 사진기사님의 필이 좋더니….”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사진기사라 하면 혼납니다. 사진기자라고 해야죠.”

“앗! 죄송합니다. 사진기자로 정정합니다.”는 장기하의 댓글까지 이어졌다.



사실, 사진기사라고 해도 좋았다. 아름답게 포장한 사진도 아니다. 멋있게 폼 잰 사진도 아니다.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사진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사진이야기를 이해하고 인정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리고 그들만의 철학으로,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이 그들만의 세상이 아닌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좋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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