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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좌익 의혹 씻기 위해 … 5·16 반공 국시, 내가 넣었다

중앙일보 2015.03.02 01:34 종합 1면 지면보기
혁명의 풍운, 권력의 영욕을 거쳐 구순(九旬)을 맞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 그가 자신이 겪은 현대사의 장면들을 증언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5·16 혁명공약의 제1항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1의로 삼는다’는 조항은 당시 박정희 소장에게 쏠린 좌익 의혹을 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밝혔다. 1961년 5·16의 설계자로 당시 혁명공약과 포고문을 직접 작성한 김 전 총리는 “혁명공약을 쓸 때 내 머릿속에는 혁명의 지도자인 박정희 장군의 제일 아픈 데가 뭐냐.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 아니냐. 이것들을 불식하려면 한마디해야겠다. 그래가지고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라는 내용을 6개 공약 가운데 첫 번째로 집어넣었다”고 중앙일보에 증언했다.



5·16의 반공 공약은 거사의 가장 중요한 명분이었으며, 당시 혁신계와 대학가에 확산된 용공적 통일 논의를 일소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기록돼 왔다. 혁명공약의 제2항은 미국과 유대 강화, 3항은 부패 일소, 4항은 민생고 해결, 5항은 국력 배양, 6항은 과업 성취 후 군 복귀를 규정하고 있다. (관련 내용은 3월 3일자 게재)



 김 전 총리는 “박 장군은 자기의 사상을 미국도 의심하고, 군 내부에서도 의심하는 데다 실제로 남로당에 연루된 혐의로 사형 구형까지 받았던 경력이 있어 좌익 콤플렉스를 아주 크게 느끼고 있었다”며 “이 때문에 박 소장이 혁명 후에도 ‘나 그만두겠다’는 소리를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소령 시절 좌익 혐의로 체포돼 1949년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구형받고(무기징역 선고) 감형과 함께 강제 예편됐다. 그 뒤 육군본부에서 문관으로 근무하다 6·25 발발 직후 현역으로 복귀했다.



 ‘현대사의 연출가’ 김종필(JP)이 입을 열었다. 5·16 이후 18년간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뤄내고 1987년 민주화 이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이질적 권력들과 차례로 손을 잡았던 김종필 전 총리가 중앙일보에 그가 겪었던 격랑의 현대사를 증언한다. 중앙일보는 그의 육성 증언을 듣기 위해 지난해 10월 인터뷰를 시작했고 내일부터 연재한다.



글=전영기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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