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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과, 꼭 … 아들딸의 약속

중앙일보 2015.03.02 00:58 종합 14면 지면보기
고 김순덕 할머니의 아들 양한석(67)씨가 지난달 28일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열린 ‘위안부 추모제’에서 헌화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나눔의 집 앞뜰에 위안부 피해자 11명과 함께 봉안돼 있다. [사진 나눔의 집]


고(故) 최선순(1927~2013)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다. 16세 때 몸이 아픈 아버지의 약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일본군에 끌려갔다. 이후 3년간 일본에 있는 군부대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 최 할머니는 힘없는 나라 때문에 겪었던 개인의 아픈 역사를 60년이 넘도록 꽁꽁 감춰 왔다. 가족들은 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 며느리가 우연히 알아내기까지 그 아픈 과거사를 몰랐다.

피해자 가족 14명 유족회 만들어
생존 쉰세 분 고령화로 활동 곤란
‘못다 핀 꽃’ 그린 할머니 아들 등
대 이어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께서 어느 날 생활보조금이 입금되는 통장을 보여주며 ‘내가 일본에 끌려가 고생을 하고 왔다고 나라에서 주는 돈이다’고 한 뒤에야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며느리 이순애(61)씨의 얘기다. 최 할머니의 손자 왕민호(37)씨는 “할머니 장례식장에 박근혜 대통령의 조화가 올 때야 할머니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 오랜 세월 동안 가족들에게 숨기고 지내셨을 할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가족 14명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족회’를 만들었다. 위안부 피해자의 가족들이 단체를 만든 것은 처음이다. 유족회에는 고 김순덕(1921~2004) 할머니, 고 최선순 할머니 등 이미 세상을 등진 위안부 피해자 2명의 유족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위안부 피해자 10명의 가족이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제에서 공식 발족식을 했다.



 최 할머니의 유족들은 아들 왕상문(60)씨, 며느리 이씨, 손자 민호씨까지 3대(代)가 유족회에 참여했다. 아들 왕씨는 “어머니가 일본에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못 듣고 간 것이 원통해 자식들이 나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사과 한마디 못 듣고 갔지만 지금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 53명은 일본의 사과를 듣고 편히 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족회에 나서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순덕 할머니의 아들 양한석(67)씨는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앞장선 어머니의 유지(遺志)를 이어받기 위해 참여했다. 김 할머니가 95년 그린 ‘못다 핀 꽃’은 미국·캐나나 등에 널리 소개돼 위안부 문제를 이슈화한 상징물이다. 지난해 8월에는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증정됐다. 그림 속에서 꽃봉오리 앞에 슬픈 표정으로 선 소녀는 김 할머니 자신이다. 양씨는 “어머니가 살아생전 그린 그림 속에는 한(恨)이 담겨 있었는데, 이제 아들 된 도리로 그 한을 풀어드리는 게 맞지 않나 싶어 유족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위안부 피해자 가족들이 위안부 문제로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다. 가족들조차 위안부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이번에 가족이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고령화 때문이다. 지난 1월 황선순 할머니와 박위남 할머니가 잇따라 별세하며 정부가 인정한 238명 중 생존자는 53명으로 줄었다. 생존자들도 고령으로 인해 증언 등의 외부 활동이 어렵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가족은 상속인으로서 법적 권리를 갖기 때문에 일본 측도 이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회는 앞으로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는 한편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피해자 증언 활동과 추모사업을 도울 계획이다. 양씨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유족들을 모아 대(代)를 이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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