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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궁 코앞서 푸틴 정적 피살 … "우린 넴초프" 추모

중앙일보 2015.03.02 00:47 종합 18면 지면보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이자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에서 괴한으로부터 네 발의 총격을 받고 숨져 있다. [모스크바 AP=뉴시스]
누가 왜 죽였을까. 이런 의문이 러시아를 뒤흔들고 있다.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으로부터 200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오랜 정적(政敵)이 즉사해서다. 서구는 러시아 정계를 물들여온 오랜 암살사를 떠올렸다. 절대 권력을 누려왔던 푸틴 대통령도 긴장하고 있다.


넴초프, 반푸틴 집회 앞두고 피격
동행한 모델 출신 여자친구는 안전
오바마 "잔혹 살인" 투명 수사 촉구
푸틴, 불똥 튈까 "살해범 꼭 잡겠다"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56) 전 부총리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크렘린궁 인근의 다리 위를 걷던 중 지나가던 차량에서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심장 등에 네 발을 맞았다고 한다. 동행했던 24세의 여자친구인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 안나 두리츠카야는 다치지 않았다.



 넴초프는 당시 크렘린궁 근처에서 반정부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붉은광장 옆의 대형백화점 ‘굼’에서 두리츠카야를 만나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연방수사위원회는 “구경 9mm 소련제 마카로프 권총이 이용됐다”면서 “철저히 준비된 계획적 범행”이라고 말했다. 넴초프의 동선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넴초프는 1일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이끌 예정이었다. 집회는 결국 그를 추모하는 자리가 됐다. 그의 살해 현장엔 무수한 꽃다발이 쌓였다. 지난달 초 샤를리 에브도 테러 때 희생자들과 연대한다는 의미로 사용됐던 ‘우리는 샤를리’란 표현을 변용한, ‘우리는 모두 넴초프’란 글귀도 등장했다.





 야권은 즉각 ‘정치적 보복’이라고 규정했다. 넴초프의 오랜 반(反) 푸틴 활동 때문이다. 야권 운동가인 드미트리 구트코프는 트위터에 “의심할 여지없는 정치 살인”이라며 “현 정권이 직접 청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권이 선전해온 (야권에 대한) 증오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주요 야당인 ‘야블로코’의 당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도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토니 브렌튼 경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제대 군인 등 우익 민족주의자들이 조성하는 끔찍한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넴초프가 우크라이나 내전에 러시아 군인들이 참전하고 있다는 걸 폭로하려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는 『푸틴과 전쟁』을 저술 중이었다. 그의 지인은 “넴초프가 살해 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파이낸셜타임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직접 연루설도 나온다. 정적들의 석연찮은 죽음들 때문이다. 넴초프 자신이 모친과의 대화란 형식을 빌어서 그럴 가능성도 언급한 적도 있다. “내가 전화 걸 때마다 어머니는 ‘언제 푸틴에 대해 무례하게 구는 걸 멈출테냐. 그가 너를 죽일 게야’라고 말씀하곤 했다”고 했다.



 서방도 이런 시각에 동조하는 기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잔혹한 살인”이라고 비난한 뒤 러시아 정부가 신속하고 공정하며 투명한 수사를 벌일 것을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넴초프가 러시아의 부패에 맞서 투쟁해온 용기에 존경한다”는 표현까지 썼다.



 크렘린은 이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발한다. 러시아를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깔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번 사건에 대해 “악의적이면서도 냉소적 살해”라고 비난한 뒤 엄정한 수사를 다짐하기도 했다. 또 넴초프의 모친에게 편지를 보내 “귀하의 아들은 항상 정직하고 열린 자세로 자신의 입장을 밝혀왔다. 살해범을 반드시 찾아내 처벌하겠다”고도 했다.



 소수설로 넴초프의 사생활 또는 사업에 의한 원한 관계일 가능성도 흘러나온다. 러시아 정보당국과 가까운 한 뉴스 사이트는 “애인의 낙태와 관련됐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넴초프=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러시아 남부인 소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니제고로드스크주 주지사(1991~97년), 연료·에너지부 장관(1997년), 제1부총리(1997~98년) 등을 거쳤다. 한때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후계자로 거론됐으나 98년 경제 위기 이후 실각했다. 근래엔 재야 반정부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러시아의 대표적 친(親)우크라이나 인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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