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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의 유레카, 유럽] 신나치에 IS까지 … '홀로코스트 망령' 70년 만에 꿈틀

중앙일보 2015.03.02 00:42 종합 19면 지면보기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럽 땅에서 유대인들이 거듭 살해됐다. 이스라엘은 여러분의 집이다.”


불경기에 반유대 극우정당 활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도 잇따라
네타냐후 "이스라엘로 돌아오라"
유럽, 유대인 엑소더스 막기 총력

지난 1월 그리스 총선에서 제3당이 된 극우 황금새벽당 지지자들이 유세하는 모습(왼쪽)과 이슬람국가(IS) 깃발을 든 대원. 황금새벽당은 독일 나치식의 경례와 파시스트 노래를 하는 시위로 유명하다. [중앙포토]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로 돌아오라고 권고했다. 지난달 15일 덴마크 코펜하겐 시내의 유대교 회당(시나고그)에서 총격테러로 유대인 1명이 살해된 직후의 일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월 9일 프랑스 파리의 코셔식료품점(유대교 율법에 따른 음식 제조) 인질극으로 4명의 유대인이 살해됐을 때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 “이민을 희망하는 모든 유대인을 환영한다.”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가 해방된 지 70년을 맞고 있는 지금 이스라엘 총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홀로코스트(유대인 인종학살)라는 전대미문의 반인륜적 범죄를 상징하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던져주는 교훈은 날로 퇴색해가고 있다. 나치가 1945년까지 유럽 유대인 3분의 2를 말살한 인류사 미증유의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21세기 유럽 대륙에 또다시 반(反)유대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파리와 코펜하겐뿐 아니다. 지난달 14일에는 프랑스 알자스주의 한 유대인 공동묘지의 묘비 250기가 훼손됐다. 일부 묘비에는 나치를 상징하는 갈고리 십자가 낙서가 돼 있었다. 지난해 5월 벨기에 브뤼셀의 유대박물관에는 무장괴한이 난입해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 4명이 숨지는 테러가 있었다. 그리스의 황금새벽당과 헝가리의 극우 조비크당 등 반유대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정당들도 약진하고 있다.



 파리 근교 센에마른에선 주민들이 말다툼 끝에 유대인 이웃에게 반유대주의 비방을 하며 쇠지렛대로 내리쳤다. 슬로바키아의 코마르노 홀로코스트 기념물은 타르 세례를 받았으며 스페인의 핀토에선 ‘히틀러가 옳았다’는 낙서가 발견됐다. 폴란드 포즈난에서 열린 축구경기에서 팬들은 “아우슈비츠가 당신들의 집이다. 유대인은 꺼져라”고 외쳤다.



 이런 현상에 대해 팝스타 마돈나는 지난달 26일 “유럽이 반유대주의에 빠져 있다”며 “우리는 광기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나치 독일 치하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물론 나치 독일처럼 정부 차원에서 유대인을 공개적으로 탄압하는 나라는 유럽에 없다. 하지만 유럽에 번져있는 뿌리깊은 반유대주의 정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칸터센터는 반유대주의 공격은 2000년대 초 이래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우선 유럽에서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유대인을 포함한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이 와중에 경제사정이 더욱 어려워진 무슬림의 인구비중이 높아가고 있는 점도 작용했다. 무슬림 중에서도 극단주의자들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이 강하다. 이전에는 극우 네오나치주의자들에 의한 반유대 범죄가 주를 이뤘으나 최근엔 극단주의 무슬림에 의한 유대인공격이 부쩍 늘고 있는 배경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봉쇄나 무력대응 수위를 높일 때마다 유럽에서의 반유대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전쟁했던 2009년과 지난해 여름에도 그랬다.



 유럽의 팔레스타인 동조자들은 홀로코스트에 빗대 ‘가자코스트(Gazacaust)’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프랑스의 시위대는 “유대인들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독일에서는 “하마스(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 유대인을 가스실로”라는 극단적인 구호까지 나왔다. 네덜란드의 한 래퍼는 “우리들의 돈과 피를 빼앗으려는 시오니스트와는 절교하겠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미국 PEW연구소는 유대인에 대한 적대행위는 2007년 이후 줄곧 증가해왔다고 보고했다. 2013년에는 전 세계 39%의 나라에서 행해졌다. 특히 유럽 조사대상 45개국 중 76%인 34개국에서 유대인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슬림이 적대행위를 당한 32개국보다 더 많은 것이다.



독일 빌레펠트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독일인 23%가 “유대인은 독일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데 동의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싱크탱크 폰다폴 조사에서는 25%가 “유대인이 경제와 금융에서 너무 지나친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무슬림 응답자의 경우 67%나 됐다. 유대인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럽 유대인 사회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독일 유대인중앙회는 잠재적 위험이 있는 지역에서 유대인 모자 키파를 착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대교 회당과 학교, 안네 프랑크 박물관 등 관련 시설들엔 경찰이 상주해 있다. 벨기에 안트베르펜 시장은 유대인 구역을 순찰하기 위해 엘리트 병력을 투입했다. 프랑스의 유대인 관련 시설은 지난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군인들이 경비하고 있다.



 루벤 비스 네덜란드 유대인중앙회 회장은 “문제는 우리가 오래도록 유대인으로서 유럽에서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부터의 로켓포 공격 등 테러위협이 상존하는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에게는 실제로 유럽보다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네타냐후 총리의 초대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유럽에서의 반유대주의 정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유럽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의 엑소더스를 막기 위해 진력을 다하고 있다. 헬레 토르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는 “덴마크 유대인에 대한 공격은 덴마크에 대한 공격”이라며 유대인을 달랬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유대인이 없는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고 말했다. 야만적인 학살을 당한 지옥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한 유대인들이 이 말만 듣고 과연 안심할 수 있을까.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70년 전 사라졌지만 반유대주의의 생명은 끈질기다.



한경환 중앙SUNDAY 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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