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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역사는 취사선택해 기억하는 게 아니다"

중앙일보 2015.03.02 00:04 종합 30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미래 50년의 한·일 동반자 관계에 대한 희망을 피력했다. 박 대통령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어제 발표한 3·1절 96주년 기념사에서 “일본이 용기 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한국과 손잡고 미래 50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의 역사 인식 변화를 전제로 광복 70주년과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올해를 한·일 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어제 박 대통령의 3·1절 연설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해 새롭고 특별한 메시지는 없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서 역사 교과서까지 한·일 간 현안을 차분하게 짚었을 뿐이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태로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함께 기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번 3·1절 기념사가 양국 관계에 물꼬를 트는 돌파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빗나갔다. 일본 측 태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박 대통령이 먼저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긴 어려웠을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태평양 전쟁 종전 70주년을 맞아 미국을 방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추진하고 있다. 종전 70주년 담화도 준비 중에 있다. 그러나 연설이나 담화에 군국주의적 침략의 역사에 대한 확실한 반성과 사죄의 메시지를 담을지는 미지수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있다. 그런 메시지가 전제되지 않는 한·일 간 미래 50년의 동반자 관계는 불가능하다.



 독일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으로 프랑스와 독일은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고 새로운 유럽 건설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용기 있고 진솔한 행동이 전제돼야 한다. 박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인용한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의 말마따나 역사는 편한 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비교적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과 상봉 정례화, 서신 교환 등 이산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협의의 조속한 개최를 촉구하면서 “더 이상 남북대화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경축하는 공동행사를 통해 민족화합과 동질성 회복의 전기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서도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북한에 대해서는 형편이 나은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금강산관광 재개나 5·24 조치 해제 문제 등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면 24개 국정 핵심과제 중 하나인 남북 간 통로 개설이 보다 수월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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