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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영안실의 멜로디

중앙일보 2015.03.02 00:03 종합 31면 지면보기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친구들 만나는 곳도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못 찾겠다 꾀꼬리’ 외치던 동네 꼬마들은 지금 종적이 묘연하다. 나도 떠났고 그들도 더 이상 날 찾지 않기 때문이다. 이따금 동심은 동네가 그립다. “얘들아 뭐하니 죽었니 살았니?”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 그들도 거기 남아 있지 않다. 운수 좋은 친구들 일부만 아직도 일을 한다. 어쩌다 만나면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이다(부러워 죽겠다는 시선이 미안한 거겠지). 일이 없는 친구들은 외로워 죽겠다고 엄살을 피운다. 심심할 때마다 ‘까옥 까옥’ 하며 주머니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로 시작하는 노래(여진 작사·작곡 ‘그리움만 쌓이네’)가 밴드의 주제곡으로 제격이다.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친구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 두 군데다. 결혼식장과 장례식장.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부모님을, 배우자를 떠나보낸다. 황망하게 본인이 먼저 가기도 한다. 결혼식장에선 박수가, 장례식장에선 악수가 주를 이룬다. 시대가 바뀌어 결혼은 선택과목이 됐지만 죽음은 필수과목이다. 나를 위한 축가는 서서 듣지만 나를 향한 진혼곡은 누워서 듣는다. 그것이 인생이다.



 가는 길이 다르고 노는 물이 달라도 눕는 곳은 같다. 기착지는 달라도 도착지는 하나다. 지난주 TV 뉴스는 장례식장 한 곳을 길게 보여주었다. 낯익은 사람들이 영정사진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상주는 문상객에게 조문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조언을 건넨다. “미운 놈보다 오래 사는 게 승자라고 생각했는데 90세(卒壽) 되니 미워할 사람이 없더라.” JP가 교장인 그곳은 거대한 문상학교였다.



 문상에서 세상을 보면 마음의 풍경도 바뀐다. 다시는 안 볼 것 같던 사람도, 상대가 잘 안 되길 바라던 경쟁자도 저마다 손에 꽃을 들고 찾아온다. “죽음 앞에선 모두가 착해지는구나.” 독했던 사람들이 유순해지고 거만해 보이던 사람들이 겸손하게 고개를 조아리니 눈빛만으로도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진다. 의심·사심·욕심이 무심·진심·선심이 된다.



 고개를 돌리니 영안실 옆에 응급실이 있다. 왜 그다지 소란스럽게 살아왔던가. 저세상 가기 전 마지막 머무는 대합실에서 착한 상봉이 이루어지는 걸 보니 스님의 질문(책 제목) 하나가 불현듯 가슴을 친다.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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