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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오른 '현직 CEO에 연임 우선권'

중앙일보 2015.03.02 00:02 경제 4면 지면보기
KB금융지주의 지배구조 개선안이 시장의 도마에 올랐다. 주인 없는 은행의 최고경영자(CEO)를 어떻게 뽑을 것이냐가 쟁점이다. 지난해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충돌로 내홍을 겪자 새로 취임한 윤종규 회장 겸 은행장은 보스턴컨설팅의 용역을 거쳐 새 카드를 내놨다.


"정부 입김서 벗어나자" 추진
금융 당국은 "내부 권력화 소지"
9일 이사회서 원안 재논의 하기로



KB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해 주요 경영진의 임기가 끝났을 때 현직에게 우선권을 주자는 게 골자다. 차기 회장을 뽑을 때 현직 회장에게 먼저 연임 의사를 물어본 뒤 경영성과, 고객만족도, 조직관리 역량 등을 따져 연임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다. 현직 CEO에게 결정적인 잘못이 없다면 연임할 수 있게 해주자는 취지다. JP모건이나 웰스파고·씨티그룹·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미국 주요 은행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경영의 연속성과 조직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은행에도 주인이 없지만 경영이 비교적 안정돼있는 건 이 제도 덕분이다. 신한은행도 과거 이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가 폐지한 적이 있다.



 KB지주가 이 제도를 들고 나온 건 과거의 상처 때문이다. KB지주는 2006년 이후 강정원·황영기·어윤대·임영록으로 CEO가 네 번이나 교체됐다. 모두 외부 출신이었다. 게다가 당시 정권의 입김을 등에 업어 ‘낙하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회장이 바뀔 때마다 외압 논란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지난해 불거진 ‘KB지주 사태’ 도 서로 다른 줄을 탄 낙하산 인사의 후유증이란 지적도 나왔다. 회장의 임기가 끝날 때마다 정권의 외압이나 내부 알력으로 경영권이 흔들리니 실적도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은행은 2005년만 해도 자산규모 197조원으로 2위인 우리은행(140조원)을 압도하던 ‘선도은행’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3분기말 현재 KB지주는 자산 301조원으로, 신한(335조원)·농협(313조원)·하나(311조원)금융지주에 뒤쳐진 상태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열린 KB금융지주 이사회는 논란 끝에 이 안건 통과를 유보했다. 원안과 달리 윤 회장이 아니라 그 다음 회장부터 이 제도를 적용하는 것으로 안건이 수정된 게 발단이 됐다. 이사회 직전 ‘윤 회장이 장기 집권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자 KB지주는 차기 회장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제도를 수정했다. 그러자 사외이사진이 “금융당국의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며 반발했다. 결국 이사회는 9일 원안과 함께 이 안건을 재논의하기로 했다. 금융당국 내부에선 이 제도가 자칫 현직 CEO의 내부권력화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시각이 강하다. 현직 CEO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이사회를 채우면 CEO와 이사회가 결탁해 장기 독재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KB지주 사태 때도 임영록 전 회장과 가까운 사외이사진이 주도해 금융감독원의 회장 해임권고를 이사회에서 부결시키는 ‘항명 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직 CEO의 내부권력화를 막기 위해선 이사회의 독립성이 관건이다. 윤 회장이 취임 후 이사진을 교체하면서 자신의 사람들이 아닌 외부 전문가를 수혈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심지어 경쟁사인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지낸 최영휘씨를 영입한 게 대표적이다. 김유니스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박재하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부소장, 이병남 LG인화원 원장 등도 윤 회장 측근이 아니라 주주의 추천을 받아 선임한 사외이사들이다. 그러나 KB지주 이사회가 지난달 이사회에서 당국과 맞서는 듯한 태도를 보인 건 되레 윤 회장의 입지를 좁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도를 출범시키기도 전에 이사회가 마치 ‘회장 지킴이’를 자처하는 듯한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박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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