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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갈매기를 시민 품에 … 조합 만들어 ‘롯데’ 지우기 시동

중앙선데이 2015.03.01 00:45 416호 14면 지면보기
신문지를 흔들며 열정적인 응원을 펼치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의 팬들. 유별난 응원에 원정팀은 부산 경기를 꺼린다. [중앙포토]
구도(球都) 부산에서 야구는 하나의 종교다. 다른 팀들은 부산 원정을 꺼린다. 주황색 봉지를 뒤집어쓰고 목이 터져라 ‘부산 갈매기’를 ‘떼창’(제창의 은어)하는 부산 시민의 모습에 어깨가 굳고 주눅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변하는 거라고 했던가. 이유 없는 맹목적 애정전선에도 이상이 생겼다. 최근 일부 시민이 롯데 자이언츠에서 ‘롯데’를 빼고 ‘부산’을 넣겠다고 나섰다. 프로야구팀의 주인은 대기업 롯데가 아니라 부산 시민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팀명도 ‘롯데 자이언츠’가 아닌 ‘부산 자이언츠’가 돼야 맞는다는 논리다.

부산 출신 교수·사업가 등으로 구성된 부산 자이언츠 협동조합 설립추진기획단은 오는 6일까지 30여 명이 참여하는 실무 추진위원회를 꾸릴 계획이다. 이에 참여하고 있는 김성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은 “협동조합 조합원 30만 명으로부터 1인당 30만원씩 총 900억원의 자산을 모은다면 롯데 자이언츠를 인수해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시도는 새로운 한국형 ‘스포츠 거버넌스’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서강대 이영훈(경제학) 교수는 “협동조합 시민구단은 팀에 더 애정을 갖게 되고 팬층을 두껍게 하는 장점이 있다”고 진단한다.

구단의 주인은 팬인가, 기업인가
롯데 자이언츠의 구단주(대행)는 오너 일가인 신동인씨다. 그가 주인이다. 하지만 프로구단은 일반 기업과 달라 오너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팬이 받쳐줘야 한다. 팬이 원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구단이 대우해줘야 하고 팬이 원하는 방식의 경기를 해야 한다. 기획단이 구단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도 “롯데가 그런 역할을 전혀 못하면서 팀이 위기에 빠졌다”는 이유에서다. 기획단에 참여하고 있는 부산여대 한승협(사회복지학) 교수는 “롯데는 부산 사람들이 원하는 야구를 하지 않는다”며 “연고지 사람들의 분노와 냉소를 풀지 못하는 구단의 운영 주체를 바꾸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롯데의 지난해 성적은 참담했다.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채 하위권에 머물렀고 팀 내분 사태까지 발생했다. 롯데 선수단은 성명을 통해 “구단의 특정 직원이 자기 라인을 만들어 선수단을 이간질했다”고 주장했다. 그게 끝이 아니다. 원정 경기 때마다 구단이 숙소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선수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온 사실이 드러나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다. 부랴부랴 야구단 대표와 단장의 동반 교체로 사태를 일단락시키려 했지만 성난 팬심은 쉽사리 진화되지 않고 있다.

LG 구단 관계자는 “부산 원정 경기를 갔을 때 예전에는 택시기사가 ‘롯데가 성적을 못 낸다’며 욕을 했었다”며 “지난해에는 아예 분노 단계를 넘어 ‘관심없다’는 냉소마저 느껴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부산 광복동의 롯데몰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택시기사 윤호근(53)씨는 “지난해 사태 후 정이 뚝 떨어졌다”며 “롯데의 야구는 올해부터 보지 않겠다”고 절연 선언을 했다. 문성준(37·수영구·자영업)씨는 “롯데는 최동원·박정태 같은 부산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를 단물만 빼먹고 굴욕적으로 대접하거나 쫓아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 시민이 롯데에 등을 돌렸다고 기획단의 구단 인수 작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협동조합 형태의 프로구단은 국내에 전례가 없다. 넥센과 NC를 제외하면 대기업이 구단을 운영한다. 대부분 수십억원 내외의 적자를 낸다. 프로 스포츠 중 유일하게 축구에 1, 2부 리그를 합쳐 10개 시민구단이 있다. 하지만 이들도 엄밀히 말하면 이름만 ‘시민구단’일 뿐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기업의 후원으로 운영되며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구단 운영에 진짜 시민이 참여하는 경우는 없다.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구단 사장이 낙하산으로 교체된다.

이런 상황에서 협동조합 설립을 위해 기꺼이 30만원을 내놓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불분명하다. 남포동에서 만난 박경호(67·영도구)씨는 “부산 팬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경고하는 데엔 공감한다”면서도 “십시일반 걷어서 팀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모(52·여)씨도 “다른 사람들이 돈을 걷어 시민구단을 만드는 것은 찬성하지만 내가 낼 의향은 없다”고 했다.

물론 조합비를 내겠다는 의견도 있다. 김석우(41·연제구)씨는 “기꺼이 돈을 내놓을 수 있다. 다른 지역이라면 몰라도 부산에서라면 시민구단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부 부산 시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900억원이 모인다 해도 그 다음의 전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일단 롯데는 구단을 매각할 뜻이 없다. 롯데 관계자는 “더 잘하라는 팬들의 질책으로 받아들이겠다”며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정희윤 스포츠산업경제연구소장은 “프로야구의 소비자는 팬들이다. 불매운동을 할 순 있겠지만 ‘무조건 팔아라’는 건 월권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스포츠 에이전트로 활동 중인 장달영 변호사는 “협동조합법에 따라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인 프로야구단을 합병할 수 없다”며 “기획단에서 금융 자회사를 거느린 농협중앙회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이는 특별법으로 정한 예외적인 경우”라고 지적했다.

팬 중심 운영은 시대적 요구
부산 자이언츠의 실험은 실패로 끝날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전문가들도 실패 가능성을 높게 본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단순한 소동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나아가 프로스포츠에 대한 시대적 요구의 변화가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장 변호사는 “팬들이 구단 운영에 참여하는 방식을 찾는다는 관점에서 이번 사태의 의미가 있다”며 “지분 일부를 팬이 소유하도록 공개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동아대 정희준(스포츠과학) 교수는 “그간 프로야구는 대기업 오너가 ‘비싼 스포츠카를 뽑는다’는 생각처럼 사세 과시나 홍보·마케팅 차원에서 운영해 온 측면이 있다”며 “연고지 기반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방향성에서 시민구단의 시도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야구 경제학』의 저자인 이영훈 교수는 “연고지 팬의 충성도를 구축하는 동시에 모기업 브랜드 가치를 올릴지 고민한다면 대기업 중심의 운영도 문제 되지 않는다”며 “롯데는 그동안 자기네 틀에 갇힌 ‘외통수 경영’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팬을 잃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자생력을 가지려면 구단의 운영 수익이 지역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국내 프로야구는 전국권 방송 기반에 입장 수입 비중도 낮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부산=장주영 기자 jy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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