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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유머로 하루 10시간 … JP, 왜 3김인지 보여준 5일

중앙일보 2015.02.26 01:12 종합 6면 지면보기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5일 오전 부인인 박영옥 여사의 발인식이 끝난 뒤 장지인 충남 부여군 가족 납골묘로 가는 차에 앉아 슬픔에 잠겨 있다. [오종택 기자]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발인이 진행되는 동안 휠체어에 앉은 김종필 전 총리(JP)의 표정은 침통했다. 영정이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 도착해 집을 한 바퀴 돌 때쯤 90세 노(老)정객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건강을 염려한 가족들이 만류했지만 “마지막 길은 봐야지”라며 화장장까지 따라 나섰다. 부인 박영옥 여사는 25일 오후 충남 부여의 가족묘원에 묻혔다. 64년을 함께 산 박 여사의 5일장이 치러지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빈소를 지킨 JP에겐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시스트’라는 애칭이 붙었다.

옆에서 지켜본 아흔 살 노(老)정객
"아직 실감 안 나" 슬픔 잠겼다가
"우스운 소리 하겠다" 농담 여유
"요즘 정치 각박해" 일침 놓기도



 JP는 빈소 안 접견실 취재를 막지 않았다. 보통은 유가족들이 쉴 수 있도록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는 공간이다. 덕분에 기자들은 하루 평균 10시간씩 이어진 노정객의 빈소정치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최대한 유족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시간대별로 순번을 정해 번갈아 취재하고 내용은 공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JP의 아내 사랑과 정치 역정에 대한 회고가 생생히 외부에 전달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JP는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에게 몇 번이고 아내의 임종 순간을 설명했다. 때론 덤덤하게, 때론 아이처럼 흐느껴 울면서 그 장면을 되새김질했다. 얼마나 상심이 크냐는 위로엔 “늦건 빠르건 한 번은 당하는 일인데 실제 당하고 보니까 허망해요. 아직은 실감이 안 나요”라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아내가) 숨 거둘 때 내가 그랬다. 아주 머지않아 나도 갈 테니까 외로워 말고 가라고, 편히 쉬라고…”라고 말할 땐 색안경 뒤로 그렁그렁 눈물이 비쳤다. 그렇게 눈물을 삼켰다 흘리길 반복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조문 왔을 땐 하염없이 울었다.



 22일엔 12시간 동안 아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은 9시간, 그 다음 날은 8시간으로 조금씩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딸 예리씨는 “저도 쓰러질 것 같은데 아버지는 오죽하겠느냐”며 휴식을 권유했다. 하지만 JP는 가래 기침을 하면서도 “여기 있을 거야”라며 고집을 부리거나 “쉬는 건 죽고 나서 실컷 하면 된다”고 무거운 농담을 했다. 조문객들이 건강을 염려하면 “반려가 죽었으니 그 사람 여명까지 내 생명에 보태서 살라고 해요. 2~3년은 더 살게요”라며 안심시켰다.



 무엇보다 돋보인 건 JP의 유머 감각이다. 슬픔에 잠겨 있다가도 지나치다 싶으면 “우스운 소리 하나 하겠다”며 불쑥 농을 던졌다. 박 여사의 64년 내조를 자랑하다가도 “살아 있을 때는 별 느낌 못 가졌는데 죽고 나서 영정 사진을 보니 꽤나 미인이다”고 말하는가 하면,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에게 “얼굴이 옛날 처녀 때하고 똑같다”며 농 섞인 덕담을 건넸다. 충청권 출신으로 김대중 전 총재의 국민회의를 택한 박병석 의원에겐 “겉으로는 자민련 갈까 그랬는데 가만 보니 싹수가 틀렸거든”이라며 뼈 있는 농담도 했다.



 굴곡의 현대사를 끌어 온 정치인들이 모이자 JP는 정치적 회한도 털어놨다. 한·일협정 논란과 관련해 “(수교 협상 때) 처음엔 3000만 불만 하라더니 8억 불을 해와도 매국노라 그러대”라며 서운함을 토로했고, 3당 합당과 관련해 “김영삼이 (내각제 개헌)한다고 해놓고 안 했어. 그래서 나도 고잉 마이웨이 했지”라며 내각제에 대한 소신을 역설했다. 현실의 정치인들에게는 “요즘 정치엔 너무 여유가 없어. 각박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JP의 빈소 정치는 왜 그가 ‘3김’인지를 보여줬다.



글=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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