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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92명 기소 구속자 '0' … 110년 간통죄 운명은

중앙일보 2015.02.26 00:46 종합 10면 지면보기
최모(49)씨와 주모(45·여)씨는 26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로부터 5년간 기다려온 답변을 듣게 됐다. 공무원인 이들은 2010년 간통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형법 제241조,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내밀한 성적 문제에 국가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 오늘 위헌 여부 결정
헌법소원 낸 당사자 대부분 집유
"형벌 실효성 떨어진다" 지적 많아

 최씨는 2002년 부인과 주말부부로 지내게 됐다. 그러던 중 2008년 직장 동료였던 주씨와 가까워지면서 살림을 차리고 아이도 낳았다. 최씨는 형사 재판 과정에서 “2005년부터 아내와의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난 상태였으며 이혼하기로 구두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혼 절차를 밟기 시작했지만 몇 달 후 부인이 “주씨가 아이를 낳으면 내가 키우겠다”고 마음을 바꿨다는 게 최씨 주장이다. 이혼 조정은 결렬됐고, 부인은 이들을 간통으로 고소했다.





 1905년 대한제국 형법대전이 공포된 이후 110년간 명맥을 이어온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해 26일 다섯 번째 결정이 선고된다. 이번 헌재 심판의 대상이 된 사건은 최씨 등이 청구한 사건을 포함해 모두 17건(헌법소원 15건, 위헌법률심판제청 2건)이다. 이들 사건 당사자 중에 유명인은 없다. 2008년 10월 합헌 결정 당시엔 배우 옥소리(본명 옥보경)씨가 청구한 사건이 포함돼 있었다.



 이번 헌법심판 청구인들의 연령은 30~60대로 고루 분포돼 있다. 직업은 전문직에서부터 무직까지 천차만별이다. 거주 지역이나 불륜에 이르게 된 과정 등도 특별한 경향이나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보통 이웃’이 “간통죄 처벌 조항은 위헌”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간통 혹은 불륜이 더 이상 특정 세대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기혼 남성의 36.9%, 여성의 6.5%가 “배우자 외의 상대와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고 답했다.



 청구인들의 사연을 분석해 보면 불륜 상대는 직장 동료나 동호회·학부모 모임 등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김모(60)씨와 장모(54·여)씨는 한 동네 주민으로 자녀들이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학부모 모임에 참여하면서 가까워졌고 김씨 부인이 이들의 관계를 눈치채 간통으로 고소했다. 공무원 이모(47)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유부녀 관리소장과 불륜 관계를 갖다 형사처벌을 받았다. 회계사인 박모(58)씨와 권모(48·여)씨의 경우 한 사무실에서 일하다 가까워진 경우다.



 연주자인 구모(53·여)씨는 예술인들의 동호회에서 만난 유부남 민모(57)씨와 2012년 3월부터 교제하던 중 사이가 틀어지면서 고초를 겪었다. 민씨가 구씨와 다른 남성들 간의 관계를 의심해 추궁하다가 욕을 했다. 지인들에게 구씨와 관련해 나쁜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구씨는 폭행까지 당했지만 민씨의 부인으로부터 간통으로 고소를 당했고 민씨와 나란히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에 구씨는 지난해 말 항소심 진행 중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소원 청구인 중 1심 이상이 진행된 12건의 당사자 16명은 전원 집행유예를 받았다. 형법 241조가 형벌로서의 실효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헌재의 간통죄 심판을 앞두고 검찰과 법원 모두 간통죄 기소와 선고를 자제해 왔다. 검찰이 지난해 간통 혐의로 기소한 892명 중 구속된 피고인은 없었다. 법원 관계자는 “다른 죄목이 추가돼 있거나 죄질이 매우 나쁜 경우를 제외하면 ‘징역 6~8월에 집행유예 2년’이 공식처럼 굳어져 있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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