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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선비들 탄식 소리 들리는 듯

중앙일보 2015.02.26 00:14 종합 21면 지면보기
하영휘
취음(翠陰) 권중면(1856~1936)은 조선의 마지막 사대부 중 하나다. 전남 능주 군수로 재직하다 고종황제가 폐위되자 벼슬을 버렸고, 나라가 망하자 낙향했다. 계룡산 북쪽 기슭에 살며 시를 짓고 서당을 열어 공부했지만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구한말 사대부들 … 』 낸 하영휘 교수
편지 원본 스캔해 옛 필체도 실어

 은둔했지만 기록을 남겼다. 동료 문인, 친지에게 받은 편지첩을 직접 묶었다. ‘양몽구독’(梁夢舊牘), ‘구독부여전’(舊牘附餘全), ‘구독습유건’(舊牘拾遺乾)이다. 총 편지 104통, 시 7수를 수록하고 있다. 권중면의 사돈 이병화, 구한말의 유명한 문신 윤용구, 글씨로 유명한 김가진 등 사대부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이다. 개인사, 건강문제에 대한 의논부터 관료, 국가행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편지첩 3종이 『구한말 사대부들의 편지』(책미래·사진)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조선시대 고문서·일기 등을 연구하는 하영휘(59)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가 번역을 하고 주석을 달았다.



 하 교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는 역사적으로 큰 전환기였는데 자료가 의외로 많지 않다. 아마도 조상의 것을 보관하는 풍습이 18세기, 19세기 초에 비해 적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공개된 편지들은 그 시대의 공백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에 좋은 자료”라고 설명했다. 편지들 안에는 재판소·경찰서가 만들어지던 이야기, 고을을 무대로 날뛰는 무법자의 모습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 교수는 “편지 안에서 갑신정변·을사조약 등 격변의 역사가 직접 언급돼 있는 것은 적지만 사회적 변화와 분위기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고 말했다. “당시는 지방 수령의 권한이 분산되고, 중앙 고관이 지방에 대토지를 소유한 채 마름을 통해 관리하던 시기인데 이 같은 이야기들이 조선 사대부의 가식 없는 글 속에 들어 있다”는 설명이다. 하 교수는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편지첩이 더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 교수는 편지를 스캔해 실어 사대부들의 필체를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의 편지는 신문지·한지·벽지 등 여러 종류의 종이에 적혀있다. 하 교수는 “나라를 잃고 산골에 은둔하며 편지를 펼쳐 놓고 간찰첩을 만들던 권중면의 마음이 어땠을까 짐작할 수 있다”며 “하루가 다르게 급변한 세월이 한바탕의 꿈처럼 아련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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