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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에볼라 구호 의료진은 국가의 자산이다

중앙일보 2015.02.26 00:03 종합 29면 지면보기
오명돈
서울대 의대 교수
서아프리카에 들불처럼 번지던 에볼라가 수그러들고 있다. 환자가 줄면서 진료소의 침대가 남아돌고, 치료제의 임상 시험도 중단되고 있다. 지금까지 2만3000명을 감염시키고 95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볼라 확산이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드디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유행은 지난해 초 기니에서 처음 발생해 이웃 나라인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으로 확산됐다. 국제 재난 현장에는 으레 구호팀이 즉시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이들 국가의 에볼라 유행지에는 몇 달이 지나도록 구호팀이 오지 않았다. 치사율이 50%를 넘고, 의료인의 감염 위험이 일반인보다 100배나 높은 에볼라에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이렇게 국제사회의 대응이 늦어지는 바람에 에볼라 불길이 확 번지고 말았다.



 뒤늦게 세계보건기구가 전염병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미국과 영국 정부가 지원에 나섰다. 의료 인력이 환자를 진료하다가 에볼라에 걸리지 않도록 특별히 설계한 진료소를 짓고, 감염되면 즉시 전문 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도록 전용 비행기도 준비했다. 우리 정부도 선발대를 보내 구호팀의 안전을 확보하고, 세 차례에 걸쳐 의료진을 파견했다. 지난 7일 출국한 제3진은 영국에서 1주일간 교육을 받은 다음, 시에라리온에서 4주간 환자를 치료할 예정이다. 제1진은 이미 임무를 모두 마치고 귀국했고, 제2진 9명도 시에라리온에서 활동을 벌인 뒤 23일 귀국했다.



 사실, 정부의 자원자 모집 발표에 많은 사람은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에볼라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료인들이 과연 몇 명이나 지원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145명이나 되는 많은 의료인이 서아프리카에 가겠다고 나섰다. 의료계가 점차 환자보다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달리, 환자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의료인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모두가 놀랐다. 이번 파견은 이런 의료인들의 사명감과 희생정신으로 가능했다.



 구호팀 파견은 우리 스스로 에볼라를 끌어들이는 위험한 결정이라며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이웃 마을에 불이 나면 화재 진압은 위험하다며 보고만 있겠는가. 불난 이웃에 달려가 불을 끄는 일은 인간의 도리임은 물론, 불똥이 우리 마을에 튀지 않도록 자기를 지키는 일이다. 이번 구호팀 파견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몫을 다하는 마땅한 도리이자, 에볼라의 근원을 진압함으로써 결국 우리를 지키는 선제적 방역 활동이다.



 이뿐만 아니라, 파견 의료진의 에볼라 진료 경험은 우리나라 환자의 치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또한 에볼라처럼 치사율이 높고 전파력이 강한 전염병을 다뤄본 의료인은 어떤 전염병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다. 이들의 경험과 자신감은 미래의 신종 전염병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줄 소중한 국가적 자산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들은 큰 환영을 받으며 귀국해 사랑하는 가족과 만나고 직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외진 곳에 격리돼 21일을 지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파견 사실이 알려질까 걱정하고 있다. 에볼라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심에 휘둘려 우리 사회가 이들을 보기만 해도 전염되는 몹쓸 환자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볼라에 대한 공포는 미국도 처음에는 우리와 비슷했다. 구호 활동 중 에볼라에 걸린 미국인 의사를 에머리대학병원으로 후송한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환자와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뉴욕시에서는 서아프리카에서 귀국한 의료인을 모두 격리하자는 여론도 거셌다. 이런 공포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에볼라는 공기로 전염되지 않는다며 에볼라 진료팀을 백악관에 초청하고, 에볼라에 걸렸다 살아난 간호사를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힘은 사명감과 희생정신에서 나온다며 이들을 미국의 영웅이라 칭송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신종 전염병 대응은 울타리 방역에 머물렀다. 신종 전염병이 나타나면 공항에 체온감지기를 설치하고, 환자의 입국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감염됐으나 채 발병하지 않은 잠복기 환자를 공항에서 잡아낼 재간은 없다. 더구나 지금은 한 해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 1400만 명, 해외여행에서 귀국하는 한국인 1600만 명, 외국에 사는 한국인 700만 명인 국제화 시대다. 그리고 세계 어느 구석에서 출발해도 이틀이면 서울에 오는 지구촌 시대에 전염병의 입국을 막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번 구호팀의 파견은 정부가 울타리 방역 수준을 넘어 지구촌 시대에 걸맞은 글로벌 방역으로 나아간 매우 역사적인 첫걸음이다.



 이번 파견을 시작으로 우리는 세계의 모든 전염병을 진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오늘날 신종 전염병은 국제사회의 안정과 경제활동을 위협하는 안보 차원의 이슈가 되었다. 이에 대비하는 일은 의료인 개인이나 의료기관의 자발적 참여에 맡길 수 없는 정부의 중요한 임무다.



오명돈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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