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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通新이 담은 사람들] 억대 연봉 CEO 출신, 환갑에 왜 9급 공무원 됐냐면

중앙일보 2015.02.25 00:01 강남통신 8면 지면보기
서초구청 최고령 신입 권호진씨.



서초구청 최고령 신입 권호진씨

억대 연봉의 외국계 기업 사장이 어느 날 말단 공무원이 됐다. 올해 환갑을 맞은 서초구청 일자리경제과의 권호진(59)씨 얘기다. 그는 올해 임용된 서울시 9급 공무원(행정직) 가운데 최고령자다. 구청에 함께 발령 받은 막내 동기(18)와 마흔한 살 차이가 난다.



 한국외대 79학번인 권씨는 미국계 보험회사인 ‘에이스 아메리칸 화재해상보험’에서 25년간 몸담았다. 김효준 현 BMW 코리아 사장(58)이 신입 시절 ‘사수’였다고 한다.



 연 매출 수천억원에 수백 명의 직원을 이끌었던 외국계기업 사장이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뭘까. 2012년 퇴직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는 권씨는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인으로 지내보니, 공익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본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워싱턴DC의 말단 공무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에도 영향을 받았다.



 시험 준비는 녹록치 않았다. 노량진과 강남 일대 고시학원을 다니며 준비했지만, 응시 첫해(2013년)에 낙방했다. 고등학생이던 둘째 아들은 “아빠가 그 나이에 공무원이 되면 내가 서울대를 간다”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고시 생활 3년째, 권씨는 경기도와 서울시 행정직(시간선택제)에 각각 합격했다. 그중 한 달 먼저 합격한 경기도에서 공무원 일을 시작했다. 그에게 주어진 건 동 주민센터에서 인감 떼는 일뿐이었다. 같은 일을 한 달 동안 반복하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기업인으로서의 경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권씨는 발령 받은 서초구에 “기업인 경력을 고려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결국 올 1월 일자리경제과에 배치됐다. 그는 현재 일자리 창출 등 구 내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권씨는 “구청 인근(송파구 장지동)에 거주하는 어머니(82)도 자주 뵐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어린 직원들과 부대끼며 일하는 것도 즐겁다고 했다. 권씨는 “외국계 기업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오래 경험하니 나이 차로 불편한 건 없다”며 “매일 새로운 걸 배우니 오히려 젊게 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급여는 박봉이다. 과거 사장 시절(1억5000만원)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앞으로의 근무 기간도 많지 않다. ‘만 60세’인 공무원 근속 규정에 따라 내년 12월이면 퇴직해야 한다. 공로연수 기간(6개월)을 제외하면 1년 6개월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일이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내 생애 가장 명예로운 직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퇴직하는 날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만난 사람=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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