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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깨끗한 세상 물려주고 싶어” … 음란사이트와 전쟁 나선 보통 아빠

중앙일보 2015.02.24 00:46 종합 10면 지면보기
김기태씨가 22일 서울 북아현동 자택에서 성매매 알선 사이트의 홍보 수법과 사이트 운영자들을 신고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나는 오늘도 퇴근 후 음란사이트에 접속한다. ‘즉석 만남’이 아닌 ‘즉시 신고’를 위해서다. 성매매 알선 사이트와 운영자들을 찾아내는 게 나의 가욋일이다. 지난해 하루 3~4시간 투자해 평균 11건, 총 3750건의 불법 유해 정보 게시물을 찾아냈다. 음란사이트 운영자 세 명도 잡았다. 나의 직업은 경찰도 검찰도 아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 근무하는 평범한 엔지니어지만 이 일을 할 때만큼은 영화 ‘테이큰’의 주인공으로 빙의(憑依)한다.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널 잡을 것이다.”


[나는 시민이다] 도시철도공사 과장 김기태씨

 일의 시작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딸 서희(10)의 손을 잡고 서울 아현동 가구거리를 걷던 2년 전 어느 날. 불법 성매매 광고 전단지들이 거리에 나뒹굴었다. “아빠 이게 뭐야”라고 묻는 딸에게 나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그 순간 직장 동료에게 들었던 ‘서울시 인터넷 시민감시단’이 떠올랐다. 성매매 광고 사이트, 전단지 등을 모니터링해 서울시에 신고하는 시민 모임이다. 곧바로 감시단에 들어갔다.



 처음엔 집에서 데스크톱으로 작업을 했으나 사이트 기록이 남아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노트북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주로 동네 도서관·카페 등의 구석 자리에 앉아 음란사이트를 찾아다녔다. ‘변태’라는 소리를 들으며 쫓겨난 것도 여러 번이다. 아내(40)는 “그런다고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며 못마땅해했다. 신고 포상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이 일에 빠져든 이유는 두 가지였다. 성매매 전단지 단속으로 거리가 깨끗해지고, 음란사이트 폐쇄로 인터넷 세상이 정화될 때마다 느끼게 되는 뿌듯함 때문이었다. 또 나의 노력으로 우리 딸이 살아갈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



이제 나는 전문가가 다 됐다. 온라인 성매매업자들의 수법을 꿰뚫고 있다. 매달 수백만~수천만원을 버는 이들에 대한 처벌이 수십만원 벌금에 그친다는 게 답답할 뿐이다. 올해는 감시단 활동을 통해 ‘성매매 추적’ 노하우를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다. ‘누군가 나서겠지’라는 수동적 자세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바로 내 일’이라 여기고 앞장서는 능동성. 그것이 시민의 조건이다.



 ◆서울시장 표창 받은 김기태씨=위 1인칭 시점 기사의 주인공은 도시철도공사 신내기술사업소의 시설과장 김기태(44)씨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3일 김씨에게 우수시민 표창을 수여 했다.



글=장혁진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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