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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필리핀 법관의 눈물

중앙일보 2015.02.24 00:03 종합 32면 지면보기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영화 ‘국제시장’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동남아 출신 외국인 커플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고등학생 몇이 이들을 조롱한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면 돈이나 벌지 주제넘게 커피를 마시느냐며. 덕수는 벌컥 화를 내며 학생들을 나무란다. 그리고 파독 광부로 일하던 시절 회상 신이 이어진다. 이 장면을 보며 떠오른 기억이 있다.



 필리핀 고위 법관 방문단이 우리 대법원을 방문한 일이 있다.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던 나는 환영 행사 준비 및 강의 일부를 담당했다. 방문단은 대부분 50~60대의 연륜 있는 법관들로 여성이 많았다. 환영 만찬 때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가벼운 여흥을 고민하다가 필리핀에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는 기사를 보고 한류 드라마 퀴즈를 준비했다. 대장금, 파리의 연인, 가을동화 등의 명대사를 영어로 번역한 후, 후배 여판사 한 명과 내가 대사를 하면 필리핀 법관들이 드라마 제목을 맞히는 퀴즈다. “내 안에 너 있다. 네 마음속엔 누가 있는지 모르지만, 내 안엔 너 있다.”, “사랑? 웃기지 마. 이제 돈으로 사겠어.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니!” 발연기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잘들 맞히시더라. 여성 법관 두 분이 엄청난 한류 팬이었다. 한국에 오면 ‘욘사마와 이욘애’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나. 독실한 가톨릭인 이분들이 인근 성당을 묻길래 알려드렸다. 택시를 타시라 권해도 굳이 걸어서 가는 길을 물어보며 한국 택시비는 너무 비싸다고 하더라. 검소한 분들이구나 생각했다.



 개인파산제도 운영 현황에 관한 강의 교재로 내가 파산부 근무 때 쓴 ‘파산이 뭐길래’라는 글을 영역하여 배부했다. 파산에 이르게 된 이들의 기구한 사연들을 담은 글이다. 그런데 강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몇 분이 이 글을 읽으며 펑펑 울어 당황했다. 필리핀에도 이런 이들이 매우 많다며. 며칠이 흘러 일정을 모두 마친 후 환송 만찬이 있었다. 첫날 친해진 나이 지긋한 여성 법관이 내게 넌지시 이날 식사 가격을 묻기에 알려드렸다. 5만원 정도였을 거다. 그런데 살짝 눈물을 보이기에 이유를 물었다. 이 한 끼 식사 가격으로 고국의 가난한 사람 수십 명이 한 끼를 먹을 수 있을 듯해 죄스럽다는 것이다.



 그 후,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유명해진 리틀 싸이 황민우군의 어머니가 베트남 사람이라는 이유로 악플러들의 괴롭힘이 심하다는 기사를 읽으며 그 필리핀 법관의 눈물을 떠올렸었다. 겉모습만 보고 가난한 이웃을 멸시하는 이들이 있다.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수치를 모르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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