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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다가오니 더 울적 … 꿈에나 언니 만날까"

중앙일보 2015.02.17 00:39 종합 12면 지면보기
북한에 언니 두 명이 있는 조장금 할머니(82)가 달력 속의 설날을 가리키며 울먹이고 있다. [장세정 기자]
대한민국의 이산가족 수가 줄고 있다. 고령으로 세월을 버티기 어려워서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 수는 12만9616명이다. 하지만 이 중 생존자는 6만8264명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90세 이상이 8592명, 80세 이상이 전체의 절반(55.3%)을 넘는다.


#2. 여한
70년 한 가슴에 품은 이산가족들
"통일 기대 키워놓고선 희망고문"

 고령의 이산가족 노인들은 설 명절이 더 외롭고 서럽다. 1월까지만 하더라도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아 남북 간에 정상회담이 거론되고 이산상봉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이산가족 노인들은 누구보다 허탈해하고 있다. 본지가 만난 이산가족 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남북한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이산가족의 아픔을 진정으로 헤아린다면 이렇게 여유를 부리진 않을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꿈에 만나는 언니=“설 명절이 다가오니 마음이 더 울적해. 혼자 누워서 고향 생각에 ‘타향살이’를 부르다 잠이 들곤 해. 꿈에나 언니를 만날까….” 서울 수서동의 임대주택에 홀로 사는 조장금(82) 할머니는 서글픈 설을 맞고 있다. 복지관에서 1주일에 두 차례 반찬을 보내주지만 식사를 직접 챙겨야 한다. 함경남도 북청군이 고향인데 큰언니를 두고 1945년 가족이 월남했다. 6·25 전쟁 때는 서울에 살던 둘째 언니마저 인민군에 끌려가 헤어졌다. 92년 미국의 지인을 통해 살아 있는 걸 확인했지만 이후 다시 소식이 끊겼다. 2000년 이산상봉을 신청한 이래 15년째 상봉 순서만 기다리고 있다. 조 할머니는 2013년 10월엔 이산상봉 순위 추첨에서 떨어졌지만 지난해 2월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대한적십자사를 찾았다. “당시 91세 노인이 추첨에서 된 뒤 숨져 내가 대신 상봉할 기회를 잡을까 해서 가봤다”고 한다. 조 할머니는 “언니 얼굴을 보고 그날 밤에 세상을 떠난다 해도 꼭 보고 싶다”며 눈물을 훔쳤다.



 #70년째 기다리는 형님=서울 염창동에 사는 심민섭(82) 할아버지는 45년 이후 70년간 넷째 형 심황섭(90)씨를 기다리고 있다. 부산에서 전차 운전을 하던 형은 친구 얘기만 듣고 평양으로 가겠다고 한 뒤 영영 무소식이다. 심 할아버지는 “조카라도 보자는 심정에 지금까지 상봉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면서 “남북이 서로 정치적인 데 치중해 이산가족의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정말 국민이 원하는 게 뭔지 제대로 봐야 해.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나. 이제 다들 아파서 움직일 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심 할아버지는 “참 힘들게 살아온 시절이 이제는 다 끝나 간다. 다 죽기 전에 핏줄이 닿아 있다는 걸 확인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여한이 없겠다”며 흐느꼈다.



 #해방둥이 이산가족=이영삼(70) 할아버지는 대동강변에서 어머니와 생이별한 경우다. 1·4 후퇴 때 대동강을 건너 월남했다. 당시 어머니는 강 저편에서 “대동강을 건너 가 있으면 남동생들과 곧 뒤따라가겠다”고 소리를 쳤다. 하지만 끝내 소식이 없다. 이 할아버지는 그동안 수차례 이산상봉을 신청했지만 한 번도 선정된 적이 없다. “신청자는 많고 고령자 순으로 하다 보니 기다리라는 말만 수없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70세가 됐다. “1월에 남북 대화를 한다기에 기대했지. 그런데 누구도 확신을 주지 않아 너무 답답해. 통일이 된다는데 기대만 잔뜩 키워놔서 도리어 ‘희망고문’을 받는 느낌이야.”



장세정·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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