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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축구바보 이광종

중앙일보 2015.02.16 08:51






















 





지난 2월 12일 아침, ‘일어나시오, 이순신’이란 헤드라인의 스포츠면 기사에 뜨악했습니다.



각급 대표팀 감독으로 한·일전 10경기(8승 2부) 무패 행진, 그래서 ‘축구계의 이순신’이라 불리는 이광종 감독.

이 감독이 급성 백혈병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안타까운 기사였습니다.



그 기사의 사진이 왠지 낯익었습니다. 사진 출처는<중앙포토>라 되어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 같기는 하지만 확신이 가지 않습니다. 이 감독 사진을 한번 찍은 적 있지만 긴가민가합니다.

(일반적으로 해당 기사의 인터뷰를 위해 찍은 사진이 아니고 자료사진을 사용할 경우, 출처를 <중앙포토>라 표기합니다.)



출근 길 내내 머리에서 그 사진이 떠나지 않습니다. 제가 찍었건 아니건 당시 찍은 이 감독의 사진을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책상에 앉자마자 데이터베이스를 뒤졌습니다.

아침 신문에서 봤던 사진, [20130710 이광종] 파일에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2013년 터키 U-20 월드컵 8강 쾌거를 이루고 귀국한 다음날, 스포츠담당 이해준기자가 스튜디오로 이 감독을 모시고 왔습니다.

인터뷰는 이미 마쳤으니 사진촬영만 하면 된다합니다. 이런 경우 서로 힘듭니다.

낯선 장소, 처음 본 기자에게 오자마자 사진 찍히는 인터뷰이는 어색해 하기 마련입니다.



이 감독은 그 누구보다도 심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뒷짐 지고 안절부절못합니다.

일찍부터 각광을 받던 스타 감독들은 연예인 못지않습니다. 그만큼 인터뷰나 사진촬영에도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능수능란하게 사진을 찍힙니다.



이전까지 이 감독은 무명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엔 ‘무명 감독이 무명 선수를 이끌고 축구가 ‘희생’ ‘헌신’ ‘투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상황이 오죽 낯설었겠습니까.



그렇다고 이 어색한 표정을 신문에 내 보낼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른바 개선장군이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야 했습니다. 결국 축구이야기로 분위기를 전환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독님, 축구 외엔 아무 것도 모르시죠?”

“그렇죠.”

“축구바보네요.”



그제야 웃습니다.



“축구 밖에 모르는 남자로 사진 찍어 드릴까요?”



대답대신 옅은 미소를 보여줍니다.



“가슴에서 축구공이 뿜어져 나오는 사진을 찍어드리죠.”

“알아서 해주십시오.”

“대신 시키는 대로 하셔야 됩니다.”

“그러죠.”



대답은 단답형, 간단명료합니다. 그나마 표정이 다소 풀어졌기에 어렵사리 촬영을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다시 확인하고 취재 뒷얘기를 들을 겸 이해준기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당시 이광종 감독 인터뷰 후일담 좀 들려줘.”

“이 감독은 한마디로 덤덤했어요. 대답도 담백했어요. 기자에게 화려하게 꾸며서 이야기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결실을 맺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축구정치’를 못하는 성격인거 같았어요.”



“스포츠 담당기자로서 볼 때 이 감독은 어떤 사람이지?”

“우리나라 축구계의 산파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15세 선수를 지도하는 유소년 전임 지도자는 물론 15·17·19·20세 대표팀의 코치와 감독을 두루 거쳤죠. 축구협회에서 유소년과 청소년 지도를 십 수 년 했습니다. 어림잡아도 그의 손을 거쳐 간 선수가 1000명은 족히 넘죠. 손흥민, 이청용, 지동원, 기성용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어떻게 보면 이 감독의 손을 한번 씩은 거쳐 간 선수들입니다.”



“오늘 이 감독 기사를 보고 심난하지 않았어?”

“이루 말할 수 없죠. 힘들게 살다가 살림 펴지면 덜컥 탈이 나는 경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우승도 했고 이제야 당신의 축구를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는데…. 의지가 강하고 축구사랑도 남다른 분이니, 잘 이겨내서 축구장에 꼭 돌아오실 겁니다.”



이해준 기자의 기대처럼 잘 극복하리라 믿습니다.



사진 찍히는 데 어색해도 됩니다. 인터뷰에 서툴러도 됩니다.



그 무엇보다 축구를 좋아하고, 그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바보’로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오길 응원합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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