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페 같은 식료품점, 그로서란트 … ‘싱글 요리족’ 천국

중앙일보 2015.02.16 00:16 종합 19면 지면보기
SNS 문화가 발전하면서 이제 전 세계의 식탁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 레시피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들이 사용하는 식재료를 구하는 일이다. 마트 에서도 스파게티 소스 정도는 구할 수 있지만 현지의 맛을 재현하기엔 부족하고 종류도 적다.


[맛있는 월요일] 색다른 장보기의 즐거움
해외 구매한 다양한 식재료 많아
드레싱·피클, 셰프들 솜씨 그대로
이탈리아 ‘펙’ 영국 ‘막스앤스펜서’
수입 브랜드도 백화점 속속 입점
햄·소시지 등 특화된 가게 등장
조금씩 맛보고 사가는 RTE 매장도
맛있는 것 먹고 쇼핑까지 해결
"현지 맛 재현" 호기심도 자극

 최근 들어 국내에 등장한 것이 ‘그로서란트’라는 이름의 매장들이다. 그로서란트는 식료품점(Grocery)과 음식점(Restaurant) 두 단어를 조합한 신조어다. 음식을 먹는 식당과 장보기를 할 수 있는 숍이 합쳐진 복합식품매장을 뜻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방금 먹은 음식을 집에서도 똑같이 재현할 수 있도록 식당 매장 한쪽에서 해당 식재료를 파는 곳이다.



 “방금 먹은 스파게티가 맛있어서 소스를 어떻게 만든 거냐 물었더니 1층 에서 판매한다고 해서 왔어요.”



 14일 토요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올리아 키친 앤 그로서리를 방문한 이은아(32)씨는 “평소 집에서 스파게티를 자주 해 먹는데 입맛에 딱 맞는 소스를 찾았다”며 좋아했다. 올리아 키친 앤 그로서리는 ‘그로서란트’ 매장으로 소문난 곳이다. 2~3층 이탈리안 식당에서 사용하는 토마토소스와 발사믹·시저샐러드 드레싱, 오이피클을 셰프들이 직접 만들고 판매도 한다.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트레이 역시 단순히 식료품을 파는 공간에서 그로서란트로 재개장을 준비 중이다. 이빛나 대표는 “맥주와 와인을 직접 냉장고에서 꺼내고 매장에서 안주까지 골라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유학 시절 또는 외국 여행길에서 들러본 유명 그로서리 체인점이 한국에 속속 입점한 것도 그로서란트 트렌드의 특징 중 하나다. 전 세계를 뒤져 최상의 품질만을 뽑아내는 외국 푸드 헌터들의 엄선된 식재료를 좀 더 다양하게 우리 식탁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에 문을 연 ‘펙(PECK)’은 그로서란트의 최고급 버전이다. 130년 전통의 이탈리아 정통 프리미엄 식품관 ‘펙’을 통째로 옮겨놓았다. 펙의 푸드 헌터들이 이탈리아 전역을 돌며 찾아낸 소스, 스파게티 면, 꿀, 잼을 비롯해 커피와 와인까지 정통 이탈리안 식료품이 가득하다. 한쪽에는 펙의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드는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를 이용한 카프레제 샐러드 등 전채요리를 조금씩 사 갈 수 있는 RTE(Ready to Eat) 매장도 있다.



 현대백화점은 성주머천다이징과 손잡고 130년 전통의 영국 대표 리테일러 브랜드 ‘막스앤스펜서 푸드’를 본점과 무역점·부산점에 입점시켰다. 홍민성 마케팅 담당자는 “ 간단한 아침부터 근사한 저녁까지 영국식 멋과 맛을 즐길 수 있는 300여 가지 식품이 준비돼 있다”고 소개했다. 3년 전 이미 ‘뉴욕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딘앤델루카를 들여온 신세계백화점은 상품군과 매장 내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식품부 송영주 바이어는 “백화점들이 지하와 상층에 고급 그로서리 매장을 여는 것은 ‘분수효과’ 또는 ‘샤워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라며 “맛있는 것을 먹고 장까지 본 소비자들이 기분이 좋아져 쇼핑까지 즐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소시지·햄 등을 판매하는 육가공 업체가 속속 식당과 결합한 매장을 열고 있는 것도 그로서란트 트렌드의 유행을 부추긴다. 2013년 말 축산물위생관리법 개정에 따라 국내에서도 정육점에서 직접 수제햄이나 소시지 제조가 가능해지면서다.



 28년의 육제품 노하우를 가진 S푸드는 신사동에 ‘존쿡 델리미트’를 열고 식당 내 전문적인 공장 설비를 갖춰 햄·소시지 등 다양한 육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 (주)대경햄은 독일식 메츠거라이(독일어로 ‘정육점’)를 추구하는 ‘어반 나이프’를 열고 50여 종의 고품질 육가공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2, 3층 식당에선 독일식 햄과 소시지 등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삼립식품은 육가공 전문 회사 알프스식품을 인수해 ‘그릭 슈바인’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동명의 독일식 식당에서 육가공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도 하고 이들을 이용한 음식까지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외국 식료품이 주를 이루는 그로서란트 매장 소비자들에는 싱글족이 많다. 이것저것 구색을 맞춰야 하는 한식보다 쉽고 빠르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면과 빵을 선호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치즈·올리브·칩을 안주 삼아 와인을 즐기는 식문화 때문이다. 어반 나이프에서 만난 싱글족 조연수(45)씨는 “ 혼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때가 많은데 햄과 소시지 종류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 좋다”며 “마트에선 혼자 먹기에 조금 많은 양을 포장해서 팔기 때문에 매번 아쉬웠는데 이런 육제품 전문점에서는 용량도 싱글 라이프에 맞게 조금씩 살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