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힘겨운 치료 견뎌왔는데 … 걸을 수만 있다면”

중앙일보 2015.02.16 00:13 종합 21면 지면보기
1년째 병원에 입원 중인 부산외대생 장연우씨와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 이정연씨. 장씨는 그동안 28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신인섭 기자]
장연우(21·부산외대 미얀마어과 1년 휴학)씨는 1년 전 기적처럼 살아났다. 무너져내린 체육관의 쇠기둥에 깔려 의식을 잃었고, 병원 후송 과정에서 심장 박동이 일시적으로 멈추기도 했다. 그런 고비를 넘기고 울산대병원을 거쳐 지난해 3월부터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병실과 수술실을 오가는 생활의 연속이다. 골반과 다리의 상처가 깊어 천장을 보는 자세로만 누워 지낸다.


[세월호 10개월 대한민국 안전보고서] 2. 수술 28차례 … 장연우씨의 투병생활 1년

 지난 12일 그런 장씨를 만났다. 밸런타인데이용 초콜릿을 건네자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밝은 표정은 거기까지였다. “어떤 마음으로 치료받고 있느냐”는 첫 질문에 얼굴이 굳어갔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몸은 작년이 더 힘들었어요. 그런데 마음은 지금이 더 아파요.”



 지금까지 수술만 28차례 받았다. 괴사된 다리 부위 피부조직을 떼어내고 다른 부위의 피부를 잘라내 이식했다. 곁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 이정연(54)씨는 “상처를 소독할 때 엄청나게 아프다고 하는데 얘는 싫은 소리 한 번 없이 버텨냈다.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장씨는 “빨리 학교에 가고 싶는 마음에 의사 선생님에게 수술을 빨리 해달라고 졸랐다”고 덧붙였다. 어머니와 딸의 눈에 동시에 물기가 어렸다.



 다리 신경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신경이 회복된다 해도 골반뼈가 어긋나게 붙어버려 정상적 보행은 어렵다는 게 의료진의 예상이다. 장씨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 놓여있다. 그 틈을 우울증이 비집고 들어왔다.



 이씨는 “얘가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얼마 전에는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위를 들고 있기에 빼앗았다”고 말했다.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도 장씨를 지치게 했다. 고통이 밤마다 찾아오고, 괴사된 피부에선 수시로 피가 스며나온다. 수면제와 진통제를 맞아도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다.



 장씨는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다랐던 1년 전 그 날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씨는 “한번은 병실 창문을 열어뒀더니 연우가 벌벌 떨면서 무섭다고 10분 정도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그는 바람 소리에도 무서움을 느낀다. 사고 당시 몸을 찍어누르던 육중한 금속체의 느낌, 홀로 남겨졌다는 외로움, 죽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트라우마’가 됐다.



 장씨는 “처음에는 친구들은 물론 국회의원까지 왔는데 이젠 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마도 내가 다들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치료비를 대고 있는 건설사 측의 행동도 그에게 상처를 남겼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 건설회사 간부가 엄마에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모르세요’라며 소리친 적도 있었요.”



 지금 그의 꿈은 단 하나다. “멀쩡해지는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걸을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눈물을 보이는 딸을 달래며 어머니가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열심히 치료받으면 내년에는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했어. 넌 강한 아이니까 해낼 수 있을거야.”



글=노진호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