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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위에서 활·칼·창 묘기 … 스포츠가 된 마상무예

중앙일보 2015.02.16 00:03 종합 27면 지면보기



조선시대 『무예도보통지』복원
김영섭씨, 10년 연구 세계연맹 설립
30개국 회원들 매년 자존심 대결
내년 세계무예대회 정식 종목 채택





갈기를 휘날리며 빠른 속도로 원형 공연장을 달리는 말. 고삐를 당기던 기수는 발을 안장 위로 옮기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러더니 서서 양팔을 벌린다. 말과 사람이 하나가 된 듯한 신묘한 연기에 공연장을 메운 아이들의 박수와 함성이 점점 커진다. 경기도 용인 한국민속촌에서는 매일 두 차례 마상재(馬上才) 공연이 펼쳐진다.



 마상재는 말 위에서 부리는 각종 곡예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선 정조 14년인 1790년 나온 책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는 마상재를 마상무예의 한 종류로 설명하고 있다. 마상무예는 말 위에서 활·칼·창 등을 사용하는 전통 무예다. 마상재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고난도 방어 기술인 셈이다. 말등을 좌·우로 넘나들고, 거꾸로 서고, 가로로 눕기도 하는 마상재 동작은 기계체조의 안마 연기를 보는 것 같다.



 오랫동안 문헌으로만 존재했던 마상무예는 한 무인(武人)의 노력 덕에 복원됐다. 김영섭(58) 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 회장은 도가(道家) 무예를 수련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김 회장은 “수련을 오래 하다보니 다양한 무예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우리 조상들이 기마민족이라고 불렸는데 제대로 된 마상무예를 찾을 수 없더라”고 했다. 그는 우연히 접한 『무예도보통지』에 나온 마상무예에 빠져 10년 넘게 연구에 매달렸다.



 하루하루가 험난했다. 마상무예에 미쳐있다 보니 운영하던 도장 형편이 점점 어려워졌다. 생활고로 가족은 흩어졌다. 그러나 한 번 시작한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김 회장은 뚝섬 승마장에 나가 말을 타고 책에 나온 자세를 몸으로 익혔다. 연습 중 말에서 떨어져 다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김 회장과 뜻을 함께 한 이들의 도움으로 1994년 마상무예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말 위에서 펼쳐지는 박진감 넘치는 묘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각종 전통문화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그래도 마상무예가 널리 보급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김 회장은 “규칙을 만들고 경쟁 요소를 넣어 일반인들과 호흡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마상무예 중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기사(騎射) 종목을 체계화했다. 2004년 10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사대회가 열렸다. 이듬해 세계기사연맹(WHAF)이 발족했고, 제1회 세계기사선수권대회가 국내에서 개최됐다. 현재 미국·독일·일본 등 30개 나라가 WHAF에 가입해 있다. 지난해 열린 10회 대회에는 16개국 1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세계대회에서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쏴 과녁을 맞히는 단사·속사·연속사 세 종목과 단체전인 모구(毛球) 종목이 열린다. 모구는 60㎝ 크기의 공을 수비편이 말을 타고 끌면서 내빼면, 공격편 선수가 뒤에서 쫓아가면서 활을 쏴 맞히는 경기다. 최근에는 중동지역의 전통 방식인 콰바크(Qabaq·장대 위에 설치된 과녁을 맞히는 경기) 등도 정식종목으로 추가됐다.



 세계대회는 유네스코(UNESCO)를 비롯해 문화체육관광부·국민체육진흥공단·한국마사회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는 국민생활체육회의 지원을 받아 전수자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매년 대학생 30명이 이 교육에 참가한다. 현재 국내에는 50여 명의 선수가 대회에 참가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김 회장의 아들인 우성(21)씨는 마상무예 선수로 활동 중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마상무예를 연마한 장수아(19) 양은 지난 2012년 특기를 인정받아 민족사관고에 입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강원도 속초에 있는 영랑호 화랑도체험관광단지에는 선수들을 위한 훈련장이 마련돼 있다. 일반인들도 이 곳에서 마상무예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김 회장은 “6개월 정도 꾸준히 훈련하면 편안하게 승마를 즐길 수 있고, 이후 단계적으로 무기의 중량을 높여 무예를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9월 충북 청주에서는 제1회 세계무예마스터십 대회가 열린다. 기사 역시 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김 회장은 “전통 마상무예가 세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가 기사 종목의 종주국이 됐다”며 “중국이 1980년대 전폭적인 투자로 소림무술을 세계에 알렸다. 우리 마상무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김원 기자



사진 설명



사진 1
마상무예는 말 위에서 활·칼·창 등을 사용하는 전통 무예다.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기사(騎射)는 규칙을 만들고 경쟁 요소를 도입해 스포츠화에 성공했다.



사진 2 말을 타고 장시(杖匙)라는 채를 이용해 공을 골문에 넣는 격구는 세종대왕이 장려한 마상무예의 일종이다.



사진 3 기사(騎射)의 세부종목인 모구는 60㎝ 크기의 공을 수비편이 끌고 내빼면 공격편이 뒤에서 쫓아가면서 활을 쏴 맞히는 경기다. [사진 한민족전통마상무예·격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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