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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증세의 역설

중앙일보 2015.02.16 00:03 종합 28면 지면보기
고현곤
편집국장 대리
새해 벽두 몰아친 연말정산 파문이 엉뚱하게 증세 논쟁으로 옮겨붙었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식의 ‘꼼수 증세’는 한계에 달했으니, 솔직하게 까놓고 세금을 더 걷자는 것이다. 납세자 입장에선 연말정산 혹을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인 셈이 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기가 호전돼 세금이 잘 걷혔으면 증세를 논의할 필요도 없었다. 불행히도 경기는 나빠졌다. 지난해 세수(稅收)가 11조원 부족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저성장과 함께 수명을 다한 것 같다. 우리 앞에 세 가지 선택이 놓여 있다. 복지를 줄이든지, 세금을 더 걷든지, 아니면 복지를 줄이고 세금도 더 걷는 절충안을 택하든지.



 야당은 당론으로 법인세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도 법인세를 만지작거린다. 강봉균·김종인 등 경제관료 원로들은 부가가치세 인상을 거론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부가세 등 간접세를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3대 세목(2015년 소득세 59조원, 법인세 46조원, 부가세 58조원) 중 두 개가 도마에 오른 셈이다. 연말정산 파문 직후여서 소득세를 손보자는 강심장은 별로 없는 듯하다.



 돈이 부족하니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 대입하면 만만치 않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증세론자들은 세율을 올리면 세금이 더 걷힌다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세금을 더 걷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마른 불황에는 더욱 그렇다.



 소득세율·법인세율을 올린다고 치자. 개인은 소득, 기업은 이익이 감소한다. 소비와 투자를 줄이게 되고, 그 여파로 장사가 안 되고, 일자리는 귀해진다. 소득과 이익은 더 줄어든다. 세율을 올려도 세금은 안 걷히고, 경기만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증세의 역설이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간접세인 부가세를 인상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 같다. 전문가들은 부가세율을 10%에서 12~13%로 올리면 약 15조원이 더 걷힐 것으로 본다. 지난해 세수 부족분 11조원을 메우고도 남는 규모다. 마침 물가가 안정돼 있으니 부가세를 올려도 충격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고통 없이 깃털을 뽑는 세액공제’에 이은 ‘깃털 2탄’인 셈이다.



 이는 부가세 인상으로 가격이 오르면 소비가 줄어든다는 점을 간과한 분석이다. 목표했던 15조원을 걷지 못하고, 내수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설령 15조원을 걷더라도 그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다. 국민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다. 저소득층이 느끼는 부담은 더 크다. 라면 한 그릇이 3000원에서 3100원으로 오르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 중 누가 힘들겠는가.



 원래 부가세는 고객이 내는 세금이다. 자영업자가 그 돈을 대신 받아 세무서에 전달하는 구조다. 하지만 자영업자는 부가세를 자신들이 내는 세금으로 여긴다. 장사가 안 되는 판에 부가세를 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다. 자영업자가 600만 명을 넘는다. 1977년 부가세 도입 당시에도 민심이 흉흉했다. 79년 10월 부마사태가 터지자 학생 시위에 합류한 상인들이 서부산세무서에 불을 질렀다.



 일본도 소비세로 홍역을 치렀다. 89년 3% 소비세를 도입했다가 이듬해 자민당 정권이 무너졌다. 97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소비세율을 5%로 올린 뒤 총선에서 참패했다. 소비 부진으로 불황만 깊어졌다. 소비세는 잃어버린 20년의 패착으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의 정무 감각과 정치력을 감안할 때 3대 세목의 세율을 손대는 건 역부족이다. 엄청난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 증세는 힘이 있는 집권 초반, 조세 저항이 적은 경기 회복기에 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은 ‘집권 중반의 불황’이다. 자칫 진영논리에 갇혀 소모적이고, 진부한 증세 논쟁으로 세월만 축내기 십상이다. 연금, 노동, 건강보험료 등 다른 개혁까지 증세 블랙홀에 빠질 우려도 있다.



 연말정산 파문에서 봤듯이 세금은 국민 합의 없이 함부로 손대는 게 아니다. 상식적으로도 돈이 부족하면 더 걷는 것보다 덜 쓰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불황에 허덕이는 납세자(개인이든 기업이든)의 호주머니부터 털 궁리를 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다.



고현곤 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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