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현장서 증발된 박원순의 ‘보존과 재생’

중앙일보 2015.02.16 00:03 종합 29면 지면보기
95년 역사의 체부동성결교회는 과거 서촌의 개방적 중인(中人) 문화를 잘 보여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서울 서촌 체부동성결교회는 공공감정가(26억원)에 교회 건물을 서울시에 매각하고 싶어 한다. 시세보다 10억원 정도 낮은 가격이다. 교인 한철구(45)씨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 런던의 역사적 교회가 나이트클럽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해외토픽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상업화되고 있는 서촌을 보세요. 공공기관이 관리해야 합니다.”



 1920년 기도실로 시작돼 서촌 주민의 모금으로 31년 교회로 건축된 곳. 일제의 문화정책에 예배가 중단되고 해방 후 다시 교회 문을 열었던 역사.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교회의 판단엔 이런 고려가 담겨 있다. 교회가 이런 의사를 시에 전달한 게 지난해 7월이었다. 하지만 아직 시는 답변이 없다. 그 사이 한 중국인이 50억원의 가격을 제시해 왔다. 교회는 기로에 서 있다.



 처음엔 일이 쉽게 풀릴 줄 알았다. ‘보존과 재생’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브랜드다. 그의 정책 기조가 반영돼 도시재생본부라는 거대 조직이 올 초 출범했다. 그뿐 아니다. 한옥조성과, 역사도심재생과, 한양도성도감과, 역사문화재과, 문화정책과 등 많은 공무원이 보존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그럼에도 박 시장의 정책과 가치는 왜 현장(체부동교회)에서 힘을 잃었을까. 염희승 목사는 “여러 부서가 매각과 관련돼 있어 누구와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부서 간 협의가 용이하도록 조정을 부탁한다는 문서를 시에 보내기도 했다”고 했다. 교회 대지 467㎡(약 142평)엔 교회 건물과 한옥 건물이 각각 존재한다. 시엔 근대건축물과 한옥을 관리하는 부서가 별도로 존재한다. 조직의 분화로 인해 일의 책임소재도 명확지 않았다.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이 사안은 우리 과 소관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시는 지난 1년간 ‘보존 가치가 있는 4대문 안의 건축유산’을 찾아 그중 210동을 중점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 교회가 여기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공공매각을 주장하는 교인들에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기자가 교인을 대신해 도심정책팀에 이를 문의했지만 “발표를 앞두고 있어 관련 사항을 말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역사도심은 시장의 관심 사안이어서 보스(시장 혹은 본부장)가 직접 브리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보안만 강조되고 정작 필요한 교인들에겐 메시지가 전달될 수 없었다. 며칠 전 박 시장은 인터뷰에서 “권력은 서비스이므로 행사하지 말고 봉사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셔널트러스트 김원 대표는 “박 시장은 내게 ‘서촌과 북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제는 박 시장이 체부동교회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여부다.



글=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