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중앙일보 2015.02.16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형구
JTBC 정치부 차장대우
지난 1월 5일 이 칼럼에서 ‘무덤에 침을 뱉든 안 뱉든’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새해 첫날 국립현충원을 찾은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건너뛰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만 참배한 데 대해 ‘포용의 정치’가 아쉽다며 쓴 글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특히 정치에서 ‘명분’과 ‘실리’는 트레이드-오프 관계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다. 협상을 밥 먹듯이 벌이는 여당과 야당의 관계에서 한 쪽이 명분을 얻으면 그에 상응하는 실리를 내주면서 양쪽은 균형을 유지한다.



 그런 정치 영역에서도 명분과 실리를 한꺼번에 챙기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포용’이다. 그리고 포용의 정치를 보여준 리더는 결과적으로 원하는 큰 꿈을 이뤘다. 우리 정치 현대사가 말해준다.



 1997년 대선을 2주 앞둔 12월 5일. 경북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박지만씨 손을 잡은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 그리고 2012년 8월 21일. 전날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에 선출된 직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두 사람의 대선 결과는 모두 잘 아는 그대로다.



 무덤을 배경으로 죽은 자와 산 자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그려낸 책 『죽은 자의 정치학』. 저자는 “산 자는 권력의 이해관계 속에서 죽은 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죽은 자가 안장된 무덤은 산 자에게 정치적인 ‘행위’의 주요 무대가 되는 셈이다.



 야당 당수인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취임 다음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아 묵념을 했다. 방명록에는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이라고 적었다. 이념이 다른 두 전직 대통령을 껴안는 모습은 일단 박수를 받았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잘한 일’이라는 견해(65%)가 ‘잘못한 일’이라는 의견(12%)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문 대표는 2012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을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만 찾았다. 그가 이번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것은 반대 세력까지 포용하는 정치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전당대회라는 컨벤션 효과도 포함됐겠지만 25%(한국갤럽 10~12일 여론조사)까지 오른 대선 주자 지지율도 덤으로 얻은 문 대표다.



 이제는 무덤을 매개로 했던 정치 행위가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할 차례다. 포용의 정치를 보여줌으로써 집권 의지를 드러냈다면 그 다음은 ‘어젠다 제시’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국정 좌표를 가리킬 수 있어야 한다.



 작가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한 말이 참고가 될까.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감을 나눠주거나 지시를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을 키워줘라.”



김형구 JTBC 정치부 차장대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