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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실로 옷감 짜기 280년 만에 비밀 풀다

중앙선데이 2015.02.14 01:21 414호 6면 지면보기
금(金)으로 실(絲)을 만들고 이렇게 만든 금실을 천에 짜 넣어 무늬를 내는 직금제직(織金製織) 기술이 복원됐다. 조선 영조 9년(1733년) 사치를 금한다며 직물에 문양을 넣어 짜는 문직기(紋織機)의 사용조차 금한 지 거의 280년 만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금사를 넣어 짠 복식 유물은 적지 않게 발견됐지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동안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충남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섬유복원연구소(소장 심연옥·55)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4년간의 연구 끝에 기술을 복원하고 사라졌던 문직기까지 만들어낸 것은 전통의 맥을 다시 이은 쾌거다.

맥 끊긴 직금제직 기술 복원한 심연옥 교수

11일 부여에서 만난 심 교수는 이번 연구가 4년이 아닌 30년간의 결실이라고 했다. “돌아가신 민길자 선생님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한 게 처음 뵌 학부 2학년 때였어요. 부모보다 더한 인연이 시작된 거죠. 그 뒤로 선생님 밑에서 직물사를 공부하면서 금사의 비밀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유물이 많고 우리와의 교류 흔적도 많이 남아있는 중국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해야한다고 일찍부터 독려한 것도 스승이었다. 덕분에 1992년 중국과 수교를 하자마자 상하이에 있는 중국 방직대(현 동화대) 박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다. 고대부터 청나라 때까지 어떤 직기를 이용해 옷감을 짰는지 연구해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KBS 기자였던 남편과 열 살, 다섯 살이던 아들들까지 함께 갈 형편은 못되었기에 혼자서 정말 눈물 흘리며 공부했어요. 아이들은 이제 다 커서 엄마하는 일을 이해한다고 하니 감사하죠(심 교수의 둘째 아들은 탤런트 정일우다).”

그뒤 국민대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 직물 5000년』등을 출간했고 2008년부터 지금의 대학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해왔다. 이번에 그가 밝혀낸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전통 방식의 금사 제작 기법. 금을 얇게 두드려 금박을 만든 뒤 이를 종이(背紙) 위에 붙여 가늘고 길게 오려내는데, 이를 ‘편금사(扁金絲)’라 한다. 편금사를 만들 때 뽕나무나 대나무 종이를 쓰는 중국이나 안피지를 쓰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전통 한지인 닥종이를 사용했고, 접착제도 옻을 쓰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아교를 사용하는 등의 독자 기술이 있었음을 밝혀냈다.

편금사를 이용해 옷감에 문양을 짜넣는 수공 문직기도 새로 만들었다. 『임원경제지』에 실린 그림과 중국 문직기를 참조해 1년 여에 걸쳐 길이 6m, 높이 4m 규모의 나무틀로 재현했다. “지금까지는 베를 짜는 베틀이나 무늬는 넣을 수 없는 평직기 정도만 남아있었다”는게 심 교수의 설명이다.

셋째는 유물 복원. 일부만 남아있던 고려 시대 ‘남색원앙문직금능’(1346년)을 비롯해 조선시대 16세기 초 용인 영덕동 출토 장저고리에 사용된 ‘금원문직금능’과 조선시대 ‘연화문직금단’을 전통 기술과 방식으로 복원해냈다. 새 문직기에 편금사를 넣고 ‘남색원앙문직금능’을 짜내는 과정도 이날 선보였다.

심 교수는 “이 학교로 오지 않았더라면, 이 학생들이 없었더라면 평생의 과제를 풀지 못했을 것”이라며 “한지 장인·보존 과학자·학생들까지 3대가 힘을 합쳐 이뤄낸 결과”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전통섬유공예 연구는 디자인과 색상 연구에 그쳤지만 재료부터 복원할 수 있게 됨으로써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의미를 부여한 그는 편금사와 비단실을 함께 꼬아 만든 ‘연금사(撚金絲)’에 대한 연구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생님께서는 ‘만약 직물을 복원하면 내 이름으로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하셨죠. 처음 복원에 성공한 지난해 연말, 직물을 들고 학생들과 함께 묘소에 다녀왔어요. 기뻐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부여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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