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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열쇠는 아주 간단 자기 실제 모습보다 잘나 보이려 하지 말라”

중앙선데이 2015.02.14 01:45 414호 16면 지면보기
상습적으로 손목을 긋는 아이가 있다. 그렇다면 이는 아이의 잘못일까, 부모의 잘못일까. 우리는 그동안 프로이트의 원인론을 굳게 믿어왔다. 부모가 아이를 잘못 키워서 혹은 어릴 적 경험이 트라우마로 작용해 리스트컷 증후군이란 결과를 낳게 됐다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 다른 목소리가 나타났다. 아이 역시 비행을 일삼고 문제를 저지르면 부모가 곤혹스러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부모에 대한 복수라는 현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행동한다는 이른바 목적론이다.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 저자 기시미 이치로

이는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ㆍ1870~1937)의 주장이다.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지크문트 프로이트ㆍ카를 구스타프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국 학자의 이름을 낯익게 만들어준 것은 이웃나라 일본이었다.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岸見一郞ㆍ59)와 작가 고가 후미타케(古賀史健ㆍ42)가 아들러 심리학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책『미움받을 용기』가 지난해 11월 출간된 이후 인문학 서적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판매량은 석달도 안돼 25쇄 10만부를 넘어섰다. 기시미의 또 다른 책인『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버텨내는 용기』도 올초 잇따라 번역됐다. 이전에도 아들러 관련 서적이 간간히 출간된 적은 있지만 가히 이상 현상이다. 아들러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기시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3대 심리학자라고 하기엔 아들러라는 이름이 너무 낯설다.
“나도 그랬다. 일본 대학의 심리학 전공 수업에서도 아들러는 잘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덜 유용한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데일 카네기의『인간관계론』, 스티븐 코비의『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등은 아들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인간관계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고루한 학문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이라 할 수 있다.”

교육학을 전공했던데 어떻게 아들러를 알게 됐나.
“대학에선 교육학을 공부했지만 늘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이후 그리스 철학을 택한 것은 철학의 모든 개념과 용어가 거기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아들러의 책은 정신과 의사인 친구의 권유로 읽게 됐다. 플라톤의 ‘대화’처럼 기술적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이치를 꿰뚫고 있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철학자인데 심리학에 빠져든 건가.
“그렇다. 1989년에 들었던 아들러 학파인 오스카 C. 크리스텐슨의 강연이 계기가 됐다. 처음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강연을 듣는 사람 모두가 그 즉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이내 행복의 열쇠는 매우 간단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내 실제 모습보다 더 우월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기만 하면 됐다.”

‘평범해질 용기’를 말하는 건가.
“기본적으로 아들러의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다. 평범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상식에 반하는 안티테제(antithese)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트라우마에 대한 부정이 대표적이다. 만약 과거의 사건이 인간의 현재를 규정한다면 어릴 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모두 같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지 않은가. 경험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미움받을 용기’란 무엇인가.
“자신의 과제를 타자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간단하다. 나는 한 번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란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학습은 아이의 과제이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면서 생겨난다.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지 않나. 자신에게 집중하면 미움은 받을지언정 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아니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매우 수직적인 사회다. 아이ㆍ여성ㆍ회사원 등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놓인 사람은 매사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부모와 남편 혹은 직장 상사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체벌 뿐 아니라 칭찬까지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의식 중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상하관계를 만들어내는 탓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치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기 때문에 평등한 관계에서 그들을 북돋아줘야 한다.”

지난해 일본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고 들었다.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수직적인 관계에 종속돼 있던 이들에게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니까.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더이상 인과론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어린 시절이 우리가 지금 행복하지 못한 이유라면 그 때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단 얘기 아닌가. 목적론에 따르면 삶에 대한 사고나 행동이 집약된 생활양식(lifestyle)을 얼마든지 다시 선택할 수 있다.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에 큰 환영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자기수용-타자신뢰-타자공헌의 3단계를 실행하기가 쉽진 않다.
“그것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학창 시절 자신감이 결여된 학생이었다. 또래보다 키(155cm)가 작았고, 그래서 친구들이 나를 비웃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키는 커서 뭐하게? 너는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잖아’라는 친구의 말은 문제를 보는 각도를 완전히 틀어주었다. 이후 나는 사람을 믿게 됐고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열망도 커졌다. 그들을 도움으로써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연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인가.
“카운슬링을 포함한 모든 강연은 내게 직업이 아닌 소명이다. 50살 때 심근경색을 앓았는데 그 때 의사가 그러더라. 책을 쓰라고, 그래야 남는다고. 이후 상태가 호전된 뒤 본격적으로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기록한 것이 플라톤이라면 당신은 아들러의 플라톤이 되고 싶다고 했다던데.
“다행히 나도 고가를 만났다. 고가는 나의 플라톤이 되어 주었다.”

고가는 아들러 본연 그대로가 아닌 기시미의 필터로 본 아들러에 끌렸다고 했다.
“플라톤과 아들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목적론’이다. 플라톤 철학을 공부한 학자로서 아들러의 심리학을 보다 명확하게 해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와 달리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재조명하게 만드는 점이 다르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기시미 이치로·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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