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근법이 아니다 한국화의 多視點으로 세계를 보자

중앙선데이 2015.02.14 01:51 414호 21면 지면보기
이어령과 떠나는 지(知)의 최전선 종군기자 생활의 마지막 날이다. 허전하다. 뭔가 무한히 계속되어야 할 화두를 남긴 채 갑작스레 필름이 끊긴 공백의 스크린. 그래도 물었다. “이제 결론을 낼 시간인데요.”

이어령과 떠나는 지(知)의 최전선 <22·끝> 평면지도를 찢어라

“결론이 어디 있어?” 이 교수의 핀잔이다. 그럴 줄 알았다.

결론은 없다. 항상 시작만 있다. 아니다. 이 교수는 항상 끝난 자리에서 시작한다. 남들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 이미 해결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 남들이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묻어버린 것. 그것들을 캐내면서 이어령의 화두는 시작된다. 이 교수가 잘 쓰는 말, ‘무덤(tomb)이 곧 자궁(womb)’인 것이다.

“세계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오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 결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자 이번에는 또 “중심이 어디 있어?”라고 진짜로 화를 낼 기미다. 컴퓨터를 켜고 구글 어스의 지구를 돌리면서 “자, 보라고. 어디가 중심이야? 어디가 동이고 어디가 서야? 지구가 둥글다고 하면서 여전히 한국을 동쪽 끝에 놓고 있는 극동이라니, 웃기지 않아? 그리고 중국은 또 뭐야. 가운데 나라라고? TV도 못 봤나. 매일 보는 기상도를 보면 좌에 중국, 우에 일본,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한국이 있지. 진짜 가운데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구만.”

농반진반 이 교수가 유쾌하게 웃었다. 갈 길이 먼데, 오늘은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그런데 지구본은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요?” 슬며시 화제를 다른 쪽으로 옮겨본다.

그러자 이번에는 위키피디아 영문사이트로 가서 ‘Crates of Mallus’라고 쳤다.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 이름과 함께 둥근 공 모양의 지구본이 떠오른다. 2세기 때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라고 한다. 그 유명한 페르가몬(지금의 터키) 도서관 관장도 지낸 사람이라고 했다. 이 교수가 ‘여전히’라고 한 말은 그러니까 “18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라는 뜻이다. 놀랍다. 그 시대에 지구를 공 모양으로 생각하고 그 위에 세계 지도를 그린 사람이 있었다니.

지구본이 아시아에 처음 들어온 것은 일본 전국시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서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 지식인 사회에 퍼진 것은 서양 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개화기 때의 일이라고 한다. 개화론자 사쿠마 쇼잔(佐久間象山)은 지구본을 ‘진귀한 물체’라며 양이파의 열혈청년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에게 보여준다. 이런 나라들과 과연 상대해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사쿠마의 제자 뻘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같은 지구본을 놓고 정반대의 해석을 했다. “네덜란드도, 영국도, 작은 나라지만, 식민지를 만들어 부강한 대국이 되었다. 우리(일본)라고 못할 게 뭔가.” 결국 이런 생각이 애꿎은 한국 정벌론을 낳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어가던 이 교수의 지구본 화두가 드디어 한국으로 들어온다. “이들보다 백 년 전에 태어났는데도 한국의 실학자 홍대용은 달랐지. 둥근 지구를 바라보면서 그는 ‘천하의 중심에 중국이 있고 사방 끝자락에 오랑캐 땅이 있다’는 화이(華夷)사상이 얼마나 황당한가를 깨달은 거야.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정계(正界)이고 남들은 횡계(橫界)요 도계(到界)라 생각하지만, 실은 이 세상에는 횡계·도계란 없어. 모두가 다 정계인 것이지.”

그리고는 남북이 거꾸로 뒤집혀있는 호주의 낯선 세계지도(사진)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면지도를 찢고 지구본으로 세상을 보자구. 동도 서도 없고 위도 아래도 없어. 오랫동안 오랑캐 땅에서 살아온 한국. 중국만 있고 일본만 있던 아시아는 이제 가라. 서양의 원근법은 항상 그림을 그리는 자의 시점에서 풍경을 본다. 하지만 겸제의 금강산 그림은 어떤가. 여기저기 헬리콥터를 타고 그린 것처럼 다(多)시점으로 되어있지 않는가. 가까운 것이 작고 먼 데 있는 것을 크게 그린 역원근법의 세계. 그래서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온통 항아리처럼 둥글게 둥글게 그려진 그 전체의 기상.”

이 교수는 말을 멈추고 호주의 세계지도 속에 거꾸로 뒤집힌 한국 지도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끝내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글 정형모 기자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