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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신 쫀쫀 … 한없이 편한 신발 비밀은 고양이 발바닥 원리

중앙선데이 2015.02.14 01:57 414호 22면 지면보기
발바닥의 감촉이 얼마나 중요한 지 감탄하며 5년을 넘겼다. 신고 있는 슬리퍼는 찰지며 폭신하고 부드러우며 쫀쫀하다. 온몸의 체중을 싣고도 짜부라지지 않는 강인함까지 갖췄다. 바닥을 끄는 슬리퍼는 스치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높은 데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 고양이의 비밀은 발바닥에 있다. 난 고양이가 발바닥으로 어떻게 충격흡수를 하는지 충분히 짐작한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11> 듀플렉스 슈즈 ‘토앤토’

지난 달력을 들춰보고서야 비로소 5년의 세월이 지났는지 알았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다른 슬리퍼를 신어본 적 없다. 내 발바닥은 밀착된 감촉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묵묵하게 숨죽여 살던 발바닥이 다른 슬리퍼를 거부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고양이 발바닥을 하나 더 단 내 발은 편안한 폭신함으로 유쾌하다.

세월이 흘러도 버리지 못하는 신발이 하나 더 있다. 점잖은 아저씨라면 손사래 칠 연두색 아웃도어용 신발이다. 신발의 온갖 면에 구멍이 나 있어 술술 바람이 통한다. 발등을 덮은 신발은 착용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가볍다. 이 정도 기능을 갖춘 신발이라면 여느 메이커의 제품이라도 얼마든지 있다. 여기서 끝난다면 나의 호들갑은 신뢰하지 않아도 좋다. 어느 신발에서 느껴보지 못한 부드러움과 적당한 탄성은 걷기의 피곤함을 중화시킨다. 민머리 아저씨와 함께 한 연두색 신발은 유라시아 대륙을 몇 번이나 넘나들었다. 험한 여정을 견딘 신발은 여전한 현역이다.

신어본 신발 가운데 가장 편한 토앤토(TAW & TOE)이야기다. ‘가장 편한’이란 수사는 거짓이 아니다. 편하기로 소문난 못난이 신발 크록스의 원형이 토앤토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리복, 퓨마 같은 세계 일류 운동화 속엔 어김없이 토앤토의 부품이 들어있다. 기능과 편안함을 강조하는 명품 신발 브랜드들의 거드름도 알고 보면 토앤토에 빚지고 있다. 토앤토는 부산의 ‘성신신소재’에서 만드는 신발 브랜드다.

한국 기업 성신신소재가 신기술로 개발
성신신소재는 신발 소재만을 전문으로 만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회사다. 한 때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신발 수출국이었다. 운동화 제조의 본산으로 활기찼던 부산은 1990년 이후 쇠락의 길을 걷는다. 많은 업체가 도산했고 업종 변경으로 살 길을 찾았다. 성신신소재를 세운 임병문은 외려 신발 산업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았다. 해를 등지고 가는 이에겐 그림자만 드리운다. 해를 마주보면 앞길은 온통 빛으로 가득한 법이다. 세상에 신발 신지 않고 사는 이는 없다. 신발밖에 모르는 인간의 집념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내 재주로 새로운 기술의 비밀은 다 알 도리가 없다. 직접 성신신소재 공장을 들러본 적 있다. 신발 만드는 과정은 상식을 벗어난 파격으로 가득했다. 많은 근로자가 열 지어 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몇 명 되지 않는 인원과 첨단 기계만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어린애 손바닥보다 작은 금형에서 뻥튀기처럼 신발이 튀어나온다. 윗덮개와 굴곡이 있는 복잡한 형체를 단 한 번의 성형으로 만들어내는 기법은 놀라웠다.

인젝션 공법이라 부르는 신기술로 더 편하고 차진 감촉이 나온다. 합성수지의 성분과 배합비율의 치밀한 연구와 실험을 거친 재료가 사용되는 것은 물론이다. 토앤토의 바탕이 된 신발 소재 ‘듀플렉스’ 탄생의 배경이다.

듀플렉스는 세계 신발업계의 판도를 바꾸었다. 이보다 더 우수한 신발소재를 만들어낸 회사가 없었던 탓이다.

흔하디 흔한 신발에 더 이상 무엇을 더할까. 신발을 단순한 물건으로 바라보면 할 일이 별로 없다. 대신 발을 위한 신발의 역할을 따져보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지금까지 발의 감각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다. 발바닥에 작은 가시만 박혀도 움직이지 못하는 민감함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형태와 디자인에 집중된 신발은 대개 편함을 포기한다. 이젠 발을 위한 편안함을 디자인으로 연결할 때다. 인간은 감각의 쾌감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세련과 고급화를 이끌어왔다. 발의 감각 또한 미분화된 쾌감을 좇게 마련이다. 이제껏 발 만을 위한 감각을 충족시키는 신발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을 위해 만들어진 듀플렉스의 진가는 여기서 드러난다. 유난히 편하게 느껴진 신발이 있다면 밑창에 듀플렉스가 들어있는지 우선 확인해볼 일이다.

접합 부위 없는 ‘통짜’‘크록스’의 원형
이탈리아의 비브람은 등산화용 밑창을 만드는 전문 메이커다. 신발 부품만으로 유명 독립 브랜드로 우뚝하게 올라섰다. 인텔 또한 컴퓨터 부품인 CPU 메이커다. 하지만 컴퓨터에 붙여진 인텔인사이드 스티커는 부품회사를 거부하는 자부심의 브랜드로 통용된다. 브랜드란 곧 특화된 전문성과 자부심의 또 다른 모습이다. 듀플렉스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재 브랜드로 떠올라야 마땅하다.

듀플렉스로 만들어진 토앤토는 접합부위가 없다. 모든 신발은 각기 다른 소재를 붙이거나 꿰메어 만들지 않던가. 지금까지 꺾이는 부분의 불편함을 당연하게 여겼던 이유다. 부드럽고 편안한 재질이 윗덮개까지 이어져 발 등까지 감싸는 감촉을 상상해 보라. 무심코 신던 토앤토의 신발이 유난히 편했던 이유를 알겠다. 발을 중심으로 한 신발은 여전히 개선될 부분을 남겨놓고 있다.

성신신소재가 직접 만든 완제품 토앤토는 희한하다. 이들 제품은 광고를 하지 않으며 아무데서나 팔지도 않는다. 사용자의 경험만으로 입소문 마케팅을 펼치는 독특한 전략의 상품이다. 토앤토 제품은 일부 병원과 약국에서만 구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의사와 발의 건강을 중시하는 의료계 사람들의 신뢰 덕분이다.

천재가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하듯 정작 국내에서 토앤토의 명성은 높지 않다. 눈 밝은 독일인들이 토앤토를 먼저 주목했다. 브랜드의 선입견 없이 좋은 물건의 가치를 인정해준 결과다. 진정 좋은 것은 가려지지 않는다. 독일에서의 인기가 국내에 역수입되어 토앤토를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인간의 감각이란 한 번 좋은 것을 체험하면 그 이하의 자극에 둔감해지는 법이다. 무시당하고 천대하던 발의 감각은 비로소 좋은 것에 눈을 떴다. 제 발에 감기는 부드러움과 찰진 감촉이 이전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 신어봐야 안다. 여러 종류의 토앤토 신발은 발의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실망할 일은 없다.

정장차림에 토앤토는 어울리지 않는다. 세련된 멋쟁이의 관심을 끌 만큼의 다양한 색채와 디자인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기능이 본질이 되고 본질이 형태가 된 합성수지 재질의 한계일 것이다. 이들 단점은 인정한다. 한데 답답한 구두와 죄는 하이힐로 고생한 발의 피로부터 풀어주어야 순서다. 인간사란 마음껏 멋 부린 이후의 시간이 더 많지 않던가?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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