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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유리 예술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

중앙선데이 2015.02.14 02:02 414호 24면 지면보기
독수리와 문장이 있는 훔펜(1587)
프라하의 아름다운 풍광과 건축 정도가 볼거리인 줄 알았던 체코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유럽 유리문화의 정수가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한·체코 수교 25주년을 맞아 기획한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전은 그것을 확인하는 자리다. 체코국립박물관·프라하장식미술관의 전폭적 지원 하에 들여온 340여 점의 주요 유물과 현대 미술작품이 이를 증명해준다.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전, 2월 10일~4월 26일 국립중앙박물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는 ‘요세프 융만에게 헌정된 잔’(1836)에는 이번 전시의 상징성이 압축돼 있다. 요세프 융만은 체코어 사전을 발간하는 등 19세기 민족문화 부흥운동을 이끈 인물. 당시 정점에 이른 세공기술로 보석처럼 보이게 만든 크리스털 잔은 300년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하에 체코어를 빼앗기고 독일어를 써야 했던 시대에도 유리제작 전통을 발전시켜 왔다는 체코의 상징이자 문화적 자존심이다.

유럽 유리문화의 ‘수도’ 체코 보헤미아
체코에서 유리문화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건 중세부터다. 그 무렵 전파된 기독교 문화가 유리와 만나 스테인드글라스를 탄생시켰다.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 3점도 이번에 한국을 찾았다. 15세기 종교개혁으로 분쟁이 일어 대부분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훼손되고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유물이다. 교회 제단화에 주로 등장하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아래 애도하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 그리고 또 한 제자가 정교한 색유리 모자이크 속에 빛나고 있다. 예수 부분은 소실됐다.

로코코 양식의 접시(1889)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러 색채의 에나멜로 장식한 유리가 인기였다. 연회에 사용된 거대한 술잔 ‘훔펜’은 거의 3000cc 피처 크기라 놀라운데, 당시 귀족들이 한잔에 술을 가득 담아 돌려마셨다는 음주문화까지 전해준다. 신성로마제국의 머리 두 개 독수리 문장에 그려진 많은 국가의 깃발 가운데 체코가 바로 독수리 머리 밑에 위치한다는 것은 신성로마제국의 통일성과 체코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천연석을 깎아 만든 배 모양 술잔 2개는 예술 애호가였던 루돌프 2세가 이탈리아의 보석세공사 미세로니 가문에게 식기 제작을 명령하면서 만들어졌다. 이 기술이 유리그릇으로 응용되면서 보헤미아의 유리공예는 크게 발전하고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이 세공법을 질 좋은 유리에 적용한 크리스털이 등장한 게 17~18세기 바로크·로코코 시대다. 유리 표면에 초상·사냥·문장 등이 섬세하게 새겨지면서 이탈리아의 명성을 넘어섰다. 루비 등 색깔 있는 유리섬유, 2중벽 유리를 만들어 안쪽에 금박 장식을 넣는 등 다양한 장식 기법도 초석을 다졌다. 로코코 양식이 유행한 18세기 중반에는 프랑스 궁중미술 따라잡기가 문화코드였던 만큼, 우윳빛 유리로 당시 귀했던 백자를 모사하고 에나멜로 부셰나 프라고나르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려 티세트를 만들기도 했다.

보석세공 기법으로 베네치아 넘어서
19세기 들자 이런 시도는 무한히 확장됐다. 천연석 모방은 기본이다. 보석을 모방한 리티알린과 마노 유리가 등장, 오묘한 매력을 뽐낸다. 중국 칠기를 연상시키는 검은 옥적석 향수병은 두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영국 웨지우드의 흑자기를 모사하고 중국풍 장식까지 더했다. 칠기를 모사한 자기를 다시 유리가 모사한 셈이다. 당대 프랑스 채색도자기와 경쟁했던 화려한 문양과 금장이 더해진 화병과 접시도 유리라는 출신 성분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감쪽같다.

영국 왕실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의 사후 애도를 위한 공식 장신구로 지정된 흑옥을 모방한 장신구 세트도 체코 유리가 당대 유럽의 패션과 문화 코드를 얼마나 발 빠르게 흡수했는지 보여준다. 18세기 초반부터 값비싼 보석을 대체하던 유리 장신구는 다이아 큐빅은 물론, 뽀얀 진주알의 영역까지 침범했다. 깨알보다도 작은 유리구슬로 전체를 수놓은 핸드백과 구두, 유리로 만든 수백 종의 단추 샘플북에 이르면 ‘유리의 한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유리문화가 발달한 곳에 맥주산업이 덩달아 발전했다’고 할 정도로 고된 노동 탓에 현대에는 공업화가 가속됐지만, 역으로 예술성 또한 극대화됐다. 단순한 실용이나 장식을 넘어선 창작의 수단으로 무궁무진한 변신을 꾀한 작품들이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 모딜리아니를 연상시키는 신비한 두상이 대표적이다. 두께의 차이로 빛의 투과율을 조절해 입체적인 형상을 투시할 수 있는 유리 캐스팅 기술로 세계 유리 공예계에 새 장을 연 작품이다. ‘유리,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대답은 전시 말미의 챙모자와 털모자가 유머러스하게 대신해 준다. ‘한계는 없다’고.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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