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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많고 통통 제철 암게 밥도둑 중의 밥도둑

중앙선데이 2015.02.14 02:20 414호 28면 지면보기
알이 푸짐하게 박힌 게살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청양고추가 맛을 더 생생하게 강조해 준다.
역시 서울이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처음 상경했던 젊은 날의 얘기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야 한다더니 그때까지 알았던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신천지였다. 음식은 더 새로웠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별미가 참 많았다. 사람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음식들도 돈을 찾아 꿈을 찾아 모두 서울로 모여들었던 모양이다. 말은 제주도로 갔지만.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53> 마포 진미식당 간장게장

꽃게로 만든 간장게장이라는 것을 먹어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이전까지 고향에서 먹었던 간장게장은 민물참게로 만든 것이었다. 간장에 오래 절인 거의 젓갈 수준이어서 게의 향은 진했지만 너무 짰다. 밥으로 감싸야 간신히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크기도 아주 작고 게살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꽃게 간장게장은 완전히 달랐다. 입에서 살살 녹는 푸짐하고 달콤한 살에 크림 같이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알까지, 이런 진미를 서울에 오니까 먹는구나 싶어서 올라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지갑이 얇은 학생 신분이라 자주 먹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지금도 꽃게 간장 게장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잊었다 싶으면 그 달콤한 맛이 다시 떠올라 곧 다시 찾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심사 숙고해서 식당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생물로 섬세하게 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에 게의 품질, 선도, 그리고 만드는 기술에 따라 맛의 편차가 심하다. 게장 간판만 보고 들어갔다가는 후회하기 딱 좋다.

마포에 ‘진미식당’이라는 곳이 있다. 근래에 꽃게 간장게장을 가장 맛있게 먹었던 곳이다. 주위에서 추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갔다가 팬이 됐다. 메뉴는 오직 간장게장 백반 딱 한가지다. 꽃게의 고장 충남 서산에서 직장을 찾아 상경했던 딸을 따라 서울에 올라온 정복순(63)씨가 그 딸(백민정·39)과 함께 2003년에 차린 곳이다. 처음부터 게장 전문은 아니었는데 게장 맛이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늘어나자 아예 전문점으로 바꿨다. 원래 어머니 정씨는 고향에서도 음식 솜씨로 소문난 분이었다. 여기에 딸 백씨를 비롯한 오빠 백승정(41), 남동생 백승훈(37)씨 등 삼 남매가 모두 어머니를 도와 열심히 일하면서 잘 자리를 잡았다.

이곳 게장은 우선 게가 아주 싱싱하고 살이 꽉 차있다. 알이 푸짐하게 들어있는 암게만 사용한다. 암게가 제철인 3~5월 사이에 서해안 항구를 거의 한 달 씩이나 돌아다니면서 값이 비싸더라도 신선하고 상태 좋은 활게만 사 모은다고 한다. 일차로 급랭을 한 다음에 물에 담가 얼음 코팅을 해서 냉동 창고에 보관을 해 놓고 사용한다. 얼음 코팅을 해 놓으면 냉동 보관 중에 게의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아서 나중에 해동했을 때 선도가 신선하게 유지된다고 했다.

게장은 비린내도 나지 않고 잡미 없이 깔끔하다. 간장 양념이 잘 배어든 게살은 입에 넣는 순간 “맛있다”는 탄성이 절로 날 정도로 조화로운 맛이다. 게가 신선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게를 깨끗하게 씻고, 무·고추·생강 등 여러 가지 야채를 넣어 끓여낸 맛 간장에 잘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듬뿍 들어있는 게 알은 어찌나 감칠맛이 나는지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게장이 ‘밥도둑’이라지만 정신없이 먹다 보면 사실 밥을 뜨기도 전에 거의 다 먹어버리기 일쑤다.

밑반찬도 푸짐하고 맛깔스럽다. 매생이보다 더 고급이라는 감태로 만든 쌉쌀한 감태김과 잘 삭은 어리굴젓은 또 다른 별미다. 고춧가루 하나도 직접 산지 밭에서 구입한 태양초를 갈아서 사용하고, 큰 솥에 밥을 한꺼번에 지으면 맛이 없다고 작은 밥솥에 여러 번 밥을 한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이런 정성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 집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꽃게 간장게장을 먹을 때면 가끔 서울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의 ‘촌놈’ 모습이 생각이 난다. 당나라 때의 문인 장구령(張九齡)은 ‘거울을 비춰 백발을 보다(照鏡見白髮)’라는 시에서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백발이 된 것을 한탄했다.

나 역시 청운의 꿈과 지금 모습은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진미를 언제든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니 이 정도면 출세한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진미식당 :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05-127 전화 02-3211-4468 일요일과 공휴일은 쉰다. 손님이 많아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간장게장 백반 1인분 3만1000원.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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