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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골목에 숨어 있었네 홍콩 뒷골목 스타일 맛집

중앙선데이 2015.02.14 02:23 414호 29면 지면보기
골목이 대세다. 아날로그의 감성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제 소박한 골목 상권으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골목에서 더 골목으로, 이 골목이 뜨면 다른 골목으로 재빠르게 옮겨간다. 가로수길 보다 세로수길, 이태원보다 경리단길, 삼청동보다 서촌길이 인기다. 애써 찾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곳, 그래서 마치 나만 알고 있는 아지트 같은 가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골목 트렌드’를 만든다.

이도은 기자의 ‘거기’: 서울 서교동 ‘림가기’

서울 서교동 ‘림가기’도 딱 그렇게, 골목에 숨어 있다. 홍대 앞의 일명 ‘커피 프린스 골목(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촬영지였던 카페가 그 골목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에서도 한 블럭 더 뒤로 들어간 곳이다. 헤매다 찾은 입구에는 ‘홍콩 어느 뒷골목에서 먹었던 그 맛집’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순간, 묘하게 설렌다. 홍콩을 가보지 않았던들 어떠랴. 영화 ‘화양연화’ ‘아비정전’ ‘무간도’에서 스쳐 지나갔던 그 뒷골목이 머릿속에 스쳐간다.

대여섯 개 되는 테이블로 꾸민 내부는 소박하지만 깔끔하다. 아기자기한 중국식 소품과 천장에 걸린 등이 이국적이다. 메뉴판을 들고 오는 여자의 미소가 순박하다. 추천 음식을 물었더니 답하는 한국말이 어눌하다. 하얼빈에서 온 중국 동포다. 7년 전 한국 남자와 결혼했고, 부부가 1년간 홍콩에서 요리를 배웠단다. “진짜 홍콩음식대로 만들면 좀 느끼하다는 분이 많아서 한국인 입맛으로 좀 맞추긴 했어요.”

일단 에피타이저로 새우·돼지고기 롤 쌀 전병을 맛본다. 생각했던 딤섬과 많이 다르다. 쌀가루를 만든 찰진 피에 소를 넣어 찐 형태. 간장 소스가 흥건히 뿌려져 있다. 홍콩에선 ‘청펀’이라 부른단다. 만두피가 젤라틴처럼 투명하고 쫄깃한 것이 특징인데, 내용물이 따로 놀아 우아하게 집어 먹기에 불편하다는 점 빼고는 입맛을 돋우는 제 역할에 충실하다.

그릇이 비워질 때쯤 오리구이가 등장한다. 중국 전통 화덕에서 구워 나오는데 한 접시를 가득 채운 모양새가 푸짐하다. 손님에게 오리의 ‘완전체’를 보여주고 난 뒤 원하면 살을 발라준다. 껍질은 바삭하면서도 쫀득하고, 속살은 부드럽다. 껍질이 눅눅해지기 전에 살코기에 싸서 먹으면 그만이다. 마치 갓 지은 쌀밥에 바삭한 김을 싸먹는 식감이다. 간이 적당히 배어있지만 소스는 따로 있다. 화덕에 구우며 고인 기름과 향신료를 섞은 소스와 매실 소스, 두 가지 모두 쉽게 접할 수 없는 맛이다.

식사가 되는 면 종류는 광둥식이다. 각종 한약재와 약초를 넣어 우려낸 육수에 숙주와 쪽파를 넣어 깊은맛이 난다. 차슈나 오리구이도 푸짐하지만 특히 비취(닭고기) 쌀국수는 아예 큼지막한 닭다리가 그대로 올려져 있다. 면발은 곤약이나 우뭇가사리가 연상되는데, 가늘고 부드러운 베트남 쌀국수보다 씹는 맛이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부인의 설명이 시작된다. “다 중국에서 공수해 와요. 사천식 매운탕면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면을 사용하는데 이것까지도요. 사람들이 왜 홍콩 식당 안 하는지 알았어요. 재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만드는 건 또 어떻고요.” 약재에 9시간 재워두는 오리구이는 하루 12마리만 판단다.

식당을 나서며 림가기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부인이 긴 말 없이 수첩을 내민다. 또박또박 ‘琳 행운의 옥, 嘉 상서로움, 記 기록’ 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멋쩍은 듯 “좋은 말을 다 붙였다”면서 배시시 웃는다. 골목에 숨어있는 건 맛이 아니라 그런 미소였는지 모르겠다.

▶림가기: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27-45, 02-3141-8808, 오전 11시30분~오후 11시, 월요일 휴무. 롤 쌀 전병 5800원. 오리 쌀국수 8000원, 홍콩 오리 구이 3만3000원.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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