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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진영논리로 변질된 증세론 복지·세금 한 테이블서 조정 시급

중앙선데이 2015.02.14 23:37 414호 1면 지면보기
복지와 증세 사이에서 대한민국이 길을 잃고 있다. 박근혜 정부 3년차에 접어들면서 복지 확대와 재원 마련 방법을 놓고 진영 논리가 판을 치면서다. 여야 모두 복지를 확대하자는 데엔 이의를 달지 않으면서도 ‘증세냐 아니냐’로 갈려 거친 논쟁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재정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일 “세수가 부족하니까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면, 그것이 정치 쪽에서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소리냐”라며 증세론에 쐐기를 박았다. 이에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이라며 각을 세웠다.

증세를 둘러싼 진영 싸움에 밀려 정작 중요한 복지의 비용·지출에 대한 점검은 뒷전이다. 성태윤(경제학) 연세대 교수는 “국가 운영의 근간인 세금 문제가 여야 간 진영 논리로 변질되면서 한정된 재원을 공동체의 행복 수준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내세웠고, 지금까지 그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성과 현실성을 둘러싼 논란 역시 여전하다. 특히 지난 10일 기획재정부의 세입·세출 마감 결과, 지난해 국세수입(205조5000억원)이 예산(216조5000억원)에 비해 10조9000억원 부족한 것으로 집계되자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박근혜 정부 5년간 복지공약 실현에 필요한 예산은 모두 135조원이다. 증세 없이 이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비과세 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세출 구조조정을 제시했지만 지난 2년간 성과를 낸 건 거의 없다. 게다가 비과세 감면 정비는 ‘꼼수 증세’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강원택(정치학) 서울대 교수는 “현 정부의 위기는 행동으로는 증세를 하면서 정작 증세라는 단어를 꺼내지조차 못하게 하는 데서 시작됐다”며 “지금처럼 미봉책으로 일관해서는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즉각적인 복지 증세에도 현실적인 장벽이 있다. 연말정산 파동에서 나타났듯 소득세를 재차 건드리기는 여야 모두 부담스러운 형편이다. 야권에서 주장하는 법인세 인상은 국제적인 인하 추세와 어긋난다.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글로벌 경제환경에서 기업들은 저세율 국가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살얼음을 걷는 듯한 경제 여건도 증세에 불리한 환경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소비세 인상 이후 내수가 급속히 위축돼 당초 내걸었던 추가 인상 시기를 18개월 연기하기로 했다. 성태윤 교수는 “복지를 위해 이런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며 “법인세 인상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복지와 세금을 둘러싸고 난무한 논의들을 일단 리셋(reset)한 다음, 기초부터 차근차근 재점검해 합의를 구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서영택(76) 전 국세청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복지제도와 조세제도를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고 복지 수준의 최적 지점과 세금 부담·재정수지 사이에 최적의 조합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터키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를 마치고 기자 간담회에서 “복지 수준과 세금 부담, 재정수지의 최적 조합을 맞추는 게 현실적인 답”이라고 했다.

경제 상황, 재정 규모, 증세 여력 등의 현실 여건에서 최적의 복지를 구현하려면 먼저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그에 따라 가용 재원을 배분하는 게 통상적인 정책집행 절차다. 이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지출을 줄이는 등 복지 전달체계에 대한 점검은 필수적이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무상보육처럼 소득 등에 관계없이 전 계층에 동일하게 지원하는 복지 시스템은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소득 연계형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 재정을 단단히 갖추려면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낸다’는 개세(皆稅)주의의 정착도 필요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현재 근로소득자 중 35%가량이 세금을 안 내는 과세 미달자다. 자영업자의 3분의 1 정도도 소득세 과세대상에서 빠진다. 서 전 청장은 “단돈 100원을 벌어도 세금을 내야 고소득층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요구할 수 있다. 과세기반은 넓게, 세율은 낮게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안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양극화 해소를 위해 복지가 필요하고, 복지를 위해서는 납세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점을 국민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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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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