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을과 을의 다툼은 서로에게 불만 쏟아내기 쉽기 때문

중앙일보 2015.02.14 17:16
을과 을의 갈등과 반목은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엔 정부 정책마저 국민을 편 갈라 누가 더 힘든지 겨루게 만들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 과보호 받는 정규직의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겠다(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전업주부가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려는 수요를 줄이겠다(보건복지부 대통령 업무보고)”는 정부의 입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전업맘과 워킹맘을 대결 구도로 밀어 넣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통 을은 현실에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을 통칭한다”고 설명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갑은 아니다. 워킹맘·전업맘도 함께 보육 문제를 극복해야 할 동반자다. 어쩌다 이들은 적대 관계가 됐을까.


乙과 乙은 어쩌다 싸우게 됐나
법적 계약관계 뜻하는 갑과 을
을과 을 갈등 갑이 방관·조작도
핵심은 신뢰, 소통과 대화로 풀어야

사회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한다. 거미줄처럼 엮인 복합적인 갑을 관계, 분노가 아래로 흐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그것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갑을 관계는 이분법적 구조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한 사람이 경우에 따라 갑일 수도, 을일 수도 있는 복합적인 위계 관계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에 따르면 스스로 을 중의 을이라 여기는 이들은 바로 위의 갑을 향해 비판을 쏟아낸다. 하지만 비판을 받는 갑 역시 스스로를 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을 향한 비판에 불만을 갖는다. 이 불만은 이내 약자를 향한 분노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을과 을, 을과 병이 갈등한다.



전상진 교수 역시 “분노는 갑이나 구조보다는 내 옆에 있는 을을 향해 흐르는 법”이라고 말했다. 위에서 짓누르는 사람이나 불공정한 법과 제도 등은 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사회구조의 속성상 분노는 아래로 흐른다”고도 했다. “분노가 아래로부터 치고 올라가면 구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분할 통치’를 그 예로 들었다. 분할 통치는 로마제국의 통치 방식이자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 통치법이기도 했다. 지배자는 피지배층의 민족과 종교, 사회적 입장, 경제적 이해 등을 이용해 내부 분열과 대립을 조장한다. 단합과 저항을 막아 지배를 쉽게 하기 위해서다. 전 교수는 이런 점에서 “을과 을의 갈등 이면엔 갑의 조작이나 방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려되는 것은 이런 상황이 고착화되는 경우다. 전 교수는 ‘갑들의 수퍼 동맹’을 그 예로 들었다. 갑들이 집단을 이뤄 독점적 지위를 지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정치적·경제적·지적 권력이 이해 연합이나 혼인 관계 등을 통해 단단한 동맹을 맺는 것이 현실”이라며 “갑의 지위에 따라 동맹도 세습된다”고 진단했다.



소모적인 다툼을 끝낼 수는 없을까.



전 교수는 “정치적 해결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시장이 실패해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남은 건 정치의 개입과 조정뿐”이라는 얘기다. 신광영 교수는 “권력 관계, 불평등 위계로 인식되고 있는 갑을 관계가 본래 의미인 법적 계약관계로 돌아가야 한다”며 “그러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용주와 고용인 등 계약 주체가 계약 내에 있는 권한과 임무를 다하는 갑을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 이를 위해 문제 해결의 주체인 정부 부처 등의 제대로 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관료와 기업도 갑을 관계로 맺어져 있다. 임현진(사회학) 서울대 명예교수는 “민주주의의 생활화와 신뢰”를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정치제도의 민주화에 머무르는 바람에 사회 전반에 불균등·불공정 현상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기본적으로 신뢰가 부족해 갈등이 생긴다”며 “소통과 대화를 증진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