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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2만원 받던 실업자서 월급 16번 받는 수퍼맨 변신

중앙일보 2015.02.14 16:59
주소 없는 명함을 쓰는 박용후. 그에겐 현재 위치가 곧 사무실이다. [사진작가 김도형]



김미경의 마이웨이⑬-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상품이나 사안 보는 관점을 설계
단순 홍보 아닌 숨은 가치 알려줘
명함에 'Here, Now’ 모든 곳이 일터
30년간 확보해둔 인맥이 최고 자산



지난해 말 불어닥친 드라마 ‘미생’ 신드롬은 대단했다. TV를 거의 안 보는 나도 매주 본방 사수를 했을 정도니까. 화면 속 직장인들의 현실은 차가웠지만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열정은 그 자체로 뜨거운 위로였다. 그런데 이 ‘국민 드라마’에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다.



“다 좋은데 결말이 마음에 안 들어요. 영업3팀 정도의 팀워크와 능력이라면 진작에 (회사를) 나와 새로 시작했어야죠. 정규직이 안 돼서, 회사에서 버림받아서 떠밀리듯 창업하는 모습이 답답했어요. 조직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으면 그 틀밖에 보이지 않는 거죠.”



오피스리스 워커(Officeless Worker)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박용후(50) 피와이에이치(PYH) 대표의 말이다. 그의 명함에는 주소가 없다. 뒷면에 ‘Here, Now(지금, 여기)’라고 큼지막이 적혀 있을 뿐이다. 지금은 내 집필실이 그의 사무실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짬짬이 카카오톡으로 광고 카피를 수정하고 앱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회의 문서를 확인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집필 중인 저서의 원고도 스마트폰으로 즉석에서 정리한다. 그렇게 종횡무진 움직이며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프로젝트 따라 일하는 ‘N분의 1 Job’

그의 직업은 ‘N분의 1 Job’이라는 신조어로 불린다. 특정한 조직에 속하지 않고 N개의 프로젝트별로 일하면서 일시적, 혹은 정기적인 수입을 올리는 일이란다. 말이야 쉽지 그렇게 ‘프리’하게 일해서 요즘 같은 세상에 먹고살 수 있느냐고? 그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 홍보 마케팅 전문가인 그가 계약한 회사만 무려 16개. 말하자면 한 달에 월급을 16번이나 받는다는 얘기다. 이미 시장에는 기존의 홍보대행사들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굳이 ‘박용후’를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단순 홍보가 아닌 관점을 디자인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냉동건조식품 대신 ‘얼리고 말려 맛을 가둔 나물’이라는 카피를 뽑는다. 친환경 용기라는 무색무취의 단어 대신 ‘60일 뒤에 지구로 돌아가는 그릇’으로 관점을 틀어주는 식이다. 자신이 홍보하는 죽(粥) 프랜차이즈에는 이런 광고를 제안하기도 했다. ‘빨리 나으셔서 밥 드셔야죠’. 죽이라는 음식에 담긴 배려의 키워드를 재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숨겨진 가치들을 찾아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코드로 바꿔 주는 것. 이는 국내 유일의 ‘관점 디자이너’인 그만의 필살기인 동시에 기업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꺼번에 16개 회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고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오히려 많을수록 시너지 효과도 커집니다. 정보가 많아지고 인맥도 넓어지니 연결만 하면 풀리는 일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의뢰가 들어오면 마치 수많은 점과 점 사이를 이어 하나의 루트를 만들 듯, 머릿속에 프로세스가 그려지는 거죠.”



물론 그 수많은 ‘점’들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쉬웠을 리 없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보다는 세상 모든 것에 점 찍기 바빴다. 호기심이 워낙 많아 집안의 가전제품은 다 뜯어보고 누군가 자신에게 욕을 하면 사전을 뒤져 어원부터 찾았다. 그의 성적표에는 한결같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주의가 산만해 성적이 향상되지 않음’.



뭔가 하나를 진득하게 못하는 건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단다. 잡지사 기자 시절에도 여러 가지 일을 벌였다. 그가 ‘이건 앞으로 뜬다’는 것마다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을 눈여겨본 회장이 아예 회사를 차려준 것이다. 당시에는 2층에 가면 편집장, 3층에서는 사장, 10층에 올라가면 본부장으로 불렸다. 그의 타고난 멀티 플레이어 기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에도 그의 행로는 한결같이 ‘산만’했다. 몇 년을 주기로 직업도, 분야도 갈아치웠다. 연예기획사 사장도 했다가 컨설팅도 했다가 외국 기업 지사장도 해봤다. 늘 돈이 생기면 새로운 일에 투자하고 공부하기에 바빴다. 그러던 2009년 그는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연예인 쇼핑몰이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도 못하고 문을 닫은 것이다. 졸지에 실업자에 빚쟁이 처지가 됐다. 당시의 유일한 수입은 매일 어머니가 줬던 용돈 2만원이 전부였다. 그때 나이가 마흔여섯이었으니 본인은 얼마나 암울했을까.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돈도 안 모으고 뭐하고 살았느냐”는 노모의 구박에 이렇게 대꾸하곤 했다. “저는 사람을 벌어놨어요.”



카카오톡 홍보 성공으로 업계 주목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을 때 손 내밀어 줬던 이가 김범수 카카오톡 의장이다. 김 의장은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하게 된 친구를 원망하는 대신 카카오톡의 홍보를 맡겼다. 아이폰이 막 나오던 시절이라 ‘앱 마케팅’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그때 박용후 대표는 그간의 경험과 인맥을 카카오톡에 쏟아부었다. 몇 년 후 카카오톡이 국민 ‘앱’으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업계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박용후식 관점 디자인으로 효과를 톡톡히 본 기업들이 늘면서 그의 파트너사는 16개가 됐다. 지금은 그의 생각과 말, 필요한 이들을 연결시키는 능력 하나하나가 높은 가격으로 팔린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출발은 그가 지난 30년간 무수히 찍어놓은 점들이었다. 수많은 경험과 고민, 발로 뛰며 사람을 만났던 고생스러운 노동들. 그러나 이 모든 점들은 세상과 그 자신이 무르익은 어떤 시점에 만나 아름다운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관점 디자인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저는 늘 사람들에게 ‘염두’를 관리하라고 해요. 염두에 있는 것들 위주로 보이고 질문하게 돼 있으니까요. ‘이건 왜 이렇지?’라고 묻다 보면 그것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고 마지막에 사전적 정의가 아닌 나만의 정의를 내리게 돼요. 그럴 때 관점이 바뀌게 되는 거죠. 이걸 자주 연습하다 보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결’이 보이기 시작해요. 마케팅의 성패도 결국 그 결을 누가 먼저 읽느냐에 달려 있죠.”



그는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관점 순례’에 나선다. 장소는 백화점이 되기도 하고 서점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상품 코너나 베스트셀러 서가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1등부터 30등까지의 책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뭐가 될까? 잘나가는 책 제목에 관점, 관찰, 관계라는 단어가 자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 다음 트렌드는 무엇이 될 것인가. 이런 무수한 점들의 노동은 관심이라는 선으로 꿰어지고 관점이라는 출구로 세상과 만난다.



슬럼프 땐 자신을 보는 관점 바꿔 탈출

관점 디자인은 그 자신의 인생에도 유용하게 쓰이곤 한다. 얼마 전 그는 깊은 슬럼프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냈다. 돈도 벌만큼 벌고, 업계에서 유명해지고, 잘나가는 강사로 인정도 받았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목표를 이룰수록 오히려 불안해지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고민하던 그는 지눌 스님이 쓴 『초발심자경문』을 읽으며 스스로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영혼이 분리돼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한’ 관점으로 자신을 철저히 객관화하는 연습을 했다. 그만큼 멀리 떨어져서야 자기가 이룬 성취라는 게 얼마나 작은 일부분이었는지 보이더란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의 도움으로 자신이 여기까지 왔는지도. 자신을 보는 관점을 바꿈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언가를 꿈꾸는 이들은 누구나 ‘점들의 시간’을 지난다. 지금 하고 있는 단편적인 노력과 경험이 결과를 내지 않는 혼돈의 시기를 겪는 것이다. 때로는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도 만나고 안 해도 좋았을 헛수고도 무수히 했을 것이다. 그 모든 점들이 선으로 연결돼 실체를 드러내려면 무조건 ‘시간’을 타야 한다. 박용후 대표는 무려 30년 가까이 기다렸다. 이제야 그가 만든 궤적들이 모여 그만의 독특한 마이웨이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 그가 찍고 있는 점들은 또 어떤 선을 그리고 있을까. 10년 뒤의 그가 궁금하다 못해 흥미진진할 정도다.





김미경 더블유인사이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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